“느리고 느긋한 삶, 모두에게 필요한 속도이자 방향”

 

PC통신 시절 만든 닉네임 밤삼킨별로 더 유명한 김효정(38) 씨는 8일 여성신문과 만나 우리 모두에게 느리고 여유있는 삶의 속도와 방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C통신 시절 만든 닉네임 '밤삼킨별'로 더 유명한 김효정(38) 씨는 8일 여성신문과 만나 우리 모두에게 느리고 여유있는 삶의 속도와 방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유독 예쁜 글씨체를 가진 아이였다고 한다. 김효정(38)씨는 꽤 오래전 자신의 캘리그래피와 사진으로 온라인상에서 유명세를 탔다. PC통신에서 미니홈피,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플랫폼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초창기 닉네임 그대로 ‘밤삼킨별’로 불리고 있다. 

홍대 ‘마켓 밤삼킨별’에서 만난 김씨는 최근 스스로를 가장 잘 나타내는 책을 냈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킨포크 테이블’의 한국판 정도라고 하면 적당한 소개일까. 단행본 책 제목은 ‘더 노크(The KNOCK)’다. 이 책에선 그가 평소 알고 싶었던 이들 26명이 만들어주는 한 끼를 소개한다. 뮤지션, 화가, 회사원, 공예가, 영화감독, 요리사, 플로리스트, ‘오뎅바’ 주인, 주부 등 각기 다른 본업에도 ‘밥’을 주제로 모으니 요리책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노크’란 말이 두드려서 관계를 위해 다가선다는 의미잖아요. ‘언제 밥 먹자’ 같은 말도 그런 시간, 관계처럼 긍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노크는 혼자의 밥, 여럿의 밥, 남자의 밥, 여자의 밥 등 4개 장으로 구성됐다. 

그는 ‘킨포크’를 아는 이들에겐 “반갑기도 반감이 되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킨포크’가 대안적 삶을 꿈꾼 미국 시골에 사는 농부, 화가, 사진가, 뮤지션 등 40명의 느리고 느긋한 삶을 공유한 계간지였으니 말이다. 최근엔 인디음악을 듣고, B급 영화를 보고, 헌책방에서 오래된 책 냄새를 맡고, 유기농 음식을 먹고,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는 일로도 치환된다. 느림과 여유에 세련되다는 의미까지 더해졌다.

“모두에게 필요한 걸음걸이, 속도, 방향이라 생각해요.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기 때문에 나누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시작했어요.”

그가 말한 삶의 방향과 속도는 무엇일까. ‘무엇’을 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누가 뭐라든 ‘오래’ 하는 것이라고 했다. 80년대 후반 학교에선 읽지 말라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책을 가져가 책으로 머리를 맞았지만 그는 학교 공부보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 쓰는 걸 더 즐기던 10대였다. 그는 “학교에선 꼴통이었는데 놔두면 묵묵하게 알아서 하는 아이였다”고 자신을 기억했다.

 

더 노크(The KNOCK) 밤삼킨별(김효정), 윌북
'더 노크(The KNOCK)' 밤삼킨별(김효정), 윌북
그에게 캘리그래퍼, 감성 사진작가, 카페 사장 중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냐고 묻자 “그냥 글 쓰고 사진도 찍는 밤삼킨별”이라고 말했다. 본업이 아닌 즐거움이기에 캘리그래피로는 돈을 받지 않는다. 누군가 돈을 줄 테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더 훌륭한 사진작가를 소개해준다고 했다. 첫 책 인세를 꽤 오랫동안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 돌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필요 이상의 것은 내 소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책 ‘더 노크’가 첫 주제를 ‘밥’으로 정한 이유는 먹고사는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한 끼를 관계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이다. 스무 살 첫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해주신 닭백숙이 기억 남는 이유는 물에 빠진 고기를 못 먹는 자신이 그 백숙으로 가족이 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차려준 밥을 더 많이 먹고 있다고 한다.

그는 ‘여자의 밥’에 대해 “여자들에게 밥은 누군가를 위해 갖다 바치는 ‘희생’ 같은 것인데 바뀌었으면 좋겠다”며 “한 끼라도 나만을 위한 밥, 정성스럽게 차려서 여유롭게 먹는 밥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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