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채용 권유에 냉소적 반응
“드라마 ‘미생’처럼 일 안 해” “리더십 없어” “지원 안 해”
“10년 전과 답변 똑같아 실망”

 

정부출연연구기관 원장들이 12월 5일 천안에서 열린 과학기술 분야 젠더격차 토론회에 참여했다. 이상천 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이 연구원장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WISET 제공
정부출연연구기관 원장들이 12월 5일 천안에서 열린 과학기술 분야 젠더격차 토론회에 참여했다. 이상천 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이 연구원장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WISET 제공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원장들이 과학기술 분야 젠더격차 토론회에서 여성 과학인을 육성할 방안보다는 각 연구원 사정을 설명하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젠더격차를 줄이기 위한 ‘톱다운’ 방식에는 공감하지만 여성 연구원들이 “리더십이 없다”거나, “드라마 ‘미생’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왔다. 10년 전 답변과 변함이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이하 위셋)와 과학기술연구회가 12월 5일 충남 천안 상록리조트 컨벤션센터에서 산하 정부출연기관 원장들을 대상으로 과학기술 분야의 젠더격차 포럼을 개최했다. 위셋이 진행하고, 발제는 한선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이 맡았다. 토론자들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출연연 27개 기관 연구원장 및 소장들로 이 중 여성 기관장은 3명뿐이었다. 

올해 젠더격차지수(Gender Gap Index)에 따르면, 우리나라 젠더격차는 지난해보다 6계단 떨어진 117위다. 연구개발(R&D) 분야는 더 심각해 여성과 남성 비율이 13 대 87이다. 위셋이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에선, 과학기술 인력의 여성 중간관리자는 8.8%, 최상급 관리자는 2.9%였다. 한선화 KISTI 원장은 “석·박사 여성의 경우 처음엔 높은 수준으로 취업하지만 40세가 지나 비율이 급락한다”며 “유리천장을 뚫지 못하고 좌절해 직장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연구 분야 지원은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세계 2위, 상근 연구원 수는 세계 6위다. 하지만 여성 연구원 비중은 17.7%로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다. 채용목표제, 승진목표제, 여성과학기술담당관제 등 제도가 있지만 모두 권고 조항이라 기관 참여가 저조하다. 이혜숙 위셋 소장은 “우리가 법이 없는 것도, 제도가 없는 것도 아니다. 실현이 안 되고 있는데 이는 문화가 바뀌어야 가능하다”며 “다른 나라를 봐도 젠더격차는 공공부처, 중앙부터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국감에서 ‘우리 분야는 특수해서 여성 인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개인적으로 실망했다”며 “10년 전 답과 똑같더라. 제가 기계 전공인데 10년 전엔 (여성이) 거의 없었으나 지금 대학도 그렇고 대학원도 여성 10% 이상은 된다. 환경이 변했기에 앞으로 원장들이 적극 여성 인력을 활용하는 마인드를 갖고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참석한 출연연 기관 원장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젠더격차 현실은 안타깝지만 여성 연구원 채용·승진 권고는 현실성이 없다고 맞받았다. 이태식 건설기술연구원장은 “토목에서 석·박사 여성이 10% 정도인데 목표 20%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분야의 특수성을 거론했다. 김기만 국가핵융합연구소장은 “여성 인력이 극히 적다”며 “저희는 지원하면 거의 뽑는데 지원을 안 한다”고 말했다.

성창모 녹색기술센터(GTC) 소장은 “연구원들에게 ‘드라마 미생을 보라. 연구소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냐’고 말한다”며 “여성 연구원 자신이 주어진 것만 일하는 게 아니라 다른 자세를 갖고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대임 표준과학연구원장은 “여성 과학자 스스로 리더십을 만들어 내는 게 핵심”이라고 동의했다. 김광호 국가보안기술연구소장은 “여성 연구원이 출산휴가를 가면 그 부담이 남성 연구원에게 오는 것에 대한 (불만과 같은) 것도 있는 것 같더라”며 여성 연구원을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를 전했다.

오태광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은 “연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연구 책임자”라며 “연구 책임자 중 여성이 몇 명이냐 하면 좋은데, 자꾸 보직자만 말하시면…”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김종경 원자력연구원장은 “여성 인력 담보는 연구책임자가 더 의미 있다”며 “여성 인력이 들어오고 난 뒤 리더로 키우기 위해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미래창조과학부 담당 과장은 이날 “여성 과학기술 인력과 관련해서 국회에서 질문이 나올 때 항상 고민되고 답하기 궁색한 현실”이라면서도 예산 지원 등에 대해선 논의가 더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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