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합의 무산’ 이유로 인권헌장 폐기 입장
여성단체들 비롯 시민사회 일제히 서울시 비난
“인권헌장을 정치적 헌정물로 전락시키면 안 돼”

 

11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회원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 등이 인권헌장 제정과 맞물려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는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다.
11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회원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 등이 인권헌장 제정과 맞물려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는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시가 시민과 함께 수개월 동안 공들여 만들어 온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합의 무산’을 이유로 거부해 폐기 위기에 놓였다. 인권헌장 제정에 직접 참여해 온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이하 시민위원회)의 대다수 위원들은 물론 여성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과 인권변호사 등 각계에서는 즉각 성명을 내고 서울시의 처사에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8월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위해 지역별·성별·연령을 고려해 무작위로 공개 추첨한 150명의 시민위원과 30명의 전문위원에 대한 위촉식을 갖고 지난 11월 28일까지 6차에 걸친 회의를 진행해 왔다. 보다 광범위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권역별 토론회 2회, 인권단체 분야별 토론회 9회, 공청회와 인권 콘서트도 개최했다. 또한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와 서울시 홈페이지 등 온라인을 통해서도 인권헌장에 대한 시민의견을 수렴해 왔다.

시민위원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한밤중이나 주말에 보통 130여 명씩 모여 한번에 3~4시간 이상씩 장시간 회의를 이어갔다. 인권에 대한 비전문가들이었지만 시민위원들은 계속되는 토론과 논의를 통해 인권조항 한 개 한 개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긴 논의를 마치고 결정을 위한 6차 회의에서 45개 조문에 대해서는 완전한 합의가 도출됐지만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 등 5개 조문에 대해 이견이 나왔고 표결로 최종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이때 서울시는 5개 조항에 대해서도 합의안 도출을 요구하며 표결을 반대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11월 30일 “지속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표결 형태의 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의 방식을 진지하게 고려해줄 것을 요청했다”며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최선의 합의를 촉구한 서울시로서는 헌장의 표결 처리에 대해 최종적으로 합의에 실패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합의’에 대한 서울시의 이러한 입장은 처음부터 견지된 것이 아닌 마지막 6차 회의에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라는 게 시민위원들의 전언이다. 합의되지 못한 5개 조항에 대해 가능하면 만장일치를 도출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표결을 포함한 의결 방법에 대해서도 논의하자고 의견이 모아졌고, 6차 회의에서 시민위원들은 의결 방식에 대한 논의 끝에 표결 방식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문경란 시민위원회 부위원장(서울시 인권위원장)은 “‘시민이 시장’이라는 게 박원순 시장의 시정 캐치프레이즈인데 그 정신에 비추어 본다면 인권헌장은 당연히 선포돼야 한다”고 단언했다. 문 부위원장은 “130여 명의 시민이 회의를 하는 모습은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라며 “시민들이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참여할 때 이런 괴력을 발휘하는구나 하는 것을 생생히 목격하는 장면”이라고 치하했다. 이어 문 부위원장은 “많은 시민위원들이 오랫동안 온 마음과 몸을 담아서 만든 것인데 어느 날 갑자기 (서울시가) 이것을 못 받겠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시민위원회의 전문위원으로 참여한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시민들이 직접 만든 인권헌장은 우리 사회의 인권이 한 단계 올라가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서울시민 인권헌장은 제정되었다고 생각하고 서울시가 반드시 선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인권은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권리이자 어떤 소수자라 하더라도 지켜져야 하는 보편적 가치인데 이에 ‘합의’라는 프레임을 갖고 오는 것은 곤란하다”며 “박원순 시장이 인권헌장을 정치적 헌정물로 전락시키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세계인권의 날인 이달 10일로 예정돼 있던 서울시민 인권헌장 선포식은 3일 현재로서는 불투명해진 상태다. 다수의 시민위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인권헌장 선포식을 어떻게 할지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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