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살 객기로 시작한 일, 벌써 17년째”
“영유아 보육업계선 난방비리 김부선급”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 책 내

 

17년 동안 어린이집을 운영한 이은경(51) 큰하늘 어린이집 대표는 엄마들이 어린이집 원장들의 비리 행태를 모르는게 답답하다고 말했다.
17년 동안 어린이집을 운영한 이은경(51) '큰하늘 어린이집' 대표는 엄마들이 어린이집 원장들의 비리 행태를 모르는게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은경(51) 사회복지법인 ‘큰하늘 어린이집’ 대표는 17년 동안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정직한 어린이집은 없다”고 말했다. 스스로 현장에서 일했기에 불법적인 운영 행태나 비리·횡령까지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내부 고발자’가 됐지만 떳떳한 어린이집 원장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이 대표는 최근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북오션)’이란 책을 냈다. 긴 제목 만큼이나 조목조목 짚은 어린이집 원장들의 행태가 충격적이다. 그는 전국에 4만1000개 민간 어린이집이 있는데 각각 사연만 따지면 4만1000개라며 책에는 다 쓰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악마 원장’ ‘악마 교사’가 적발돼도 몇 개월 징계 받으면 끝, 다른 지역에서 또다시 어린이집을 낼 수 있는 현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닭 한 마리로 90명 아이들을 먹이고 유령 교사를 두고, 썩은 달걀을 아이에게 강제로 먹인 어린이집이 한두 사람만의 문제일까. 각종 비리를 폭로하고 크고 작은 제도를 고치기 위해 뛰어다니다 보니 “업계에선 아파트 난방 비리를 폭로한 '김부선급'”이라고 말했다.

지역에서 어린이집 원장을 했기에 자연스럽게 이런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구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회장,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감사(법인 담당)로 활동하면서는 어린이집 문제점과 제도 개선을 위해 전국을 누볐다. 이 과정에서 접한 내용들은 기가 차다. 현장체험학습비, 특별활동비, 급식비, 교사 인건비 등 공금을 유용하거나 담당 공무원, 관련 업체와 짜고 횡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제대로 받아야 할 보육 서비스에서 제외됐다.

그는 어린이집 운영과 관련한 법이 이런 상황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했다. 어린이집은 비영리국가목적사업으로 분류돼 자비로 세운 어린이집 운영 이윤은 100% 영유아에게만 돌아가야 한다. 즉, 어린이집 원장은 일정 월급만 가져가야 하는데, 법대로 하면 막대한 초기 비용을 들여도 실제 본인 돈을 회수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설상가상 대출금과 권리금을 내고 시작한 어린이집 원장이라면 결국 비리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가야 하는 돈이 결국 대출금을 갚고 월세로 빠지고 전세보증금으로 쓰이는데도 어린이집 원장, 교사, 엄마들, 공무원까지 침묵하는 걸 가만히 볼 수가 없었어요. 이런 사실을 엄마들은 전혀 모르더라고요.”

일부 엄마들까지 편승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보육료 75만원을 원장과 나눠 갖는 일도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집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에겐 매달 20만원(12개월 미만)을 지급하며, 어린이집에 보낼 경우 2013년 1월 이후 출생 기준으로 부모 양육 몫 39만4000원, 어린이집 운영 몫 36만1000원으로 총 75만5000원을 어린이집에 지급한다. 그는 “이럴 바에는 차라리 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 75만원을 엄마에게 모두 주는 게 오히려 양육에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 이은경, 북오션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 이은경, 북오션
허술한 제도와 관리·감독으로 지난 17년 동안 어린이집 관련 공청회, 토론회 등 안 가본 곳이 없다. 가족은 대충 원금만 회수해서 마무리 짓자고 했지만 도저히 눈감을 수 없어서 한두 해만 해보겠다고 한 게 17년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 목소리를 기억해 준 국회의원도 만났다. 당시 열린우리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오제세 의원은 마이크를 잡고 열변을 토하는 이 대표를 보고선 나중에 직접 전화를 걸어와 어린이집 제도를 상세히 질문했었다고 한다. 그 후 정권이 바뀌고 오 의원은 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영유아보육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유일하게 야당 의원으로 참여했다. 이 대표는 책에선 이름을 쓰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약속을 지켜준 국회의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일을 하기 전엔 국가보훈처 공무원으로 일하다 아이를 낳은 평범한 엄마였다고 했다. “서른네 살 초창기 때는 젊은 객기로 내가 해결해 보겠다고 했었다. 만약 지금 그때로 돌아가면 아마 동조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공립 어린이집은 5.3%(2013년 기준)로 전국 4000개다. 나머지 4만1000개 민간 어린이집은 국가 지원이 거의 없이 운영비, 시설 개·보수비를 자체 해결하고 있다. 정부가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대하고 우후죽순 생긴 민간 어린이집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말이 엄마들의 귀에도 들리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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