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대상의 아픔을 느낀다는 것
살아있는 대상의 아픔을 느낀다는 것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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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요란하고 떠들썩하게 맞이했던 새천년도 벌써 한달이나 흘

러갔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새로운 천년을 맞으면서 20세기를 어

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해 왔는지 한껏

진지한 성찰의 분위기가 만들어지더니만, 어느새 그런 숙연하고 겸

손한 뒤돌아봄의 분위기도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물론 그 진실되고 간절한 성찰의 흐름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조용히 흐르고 있으리라 확신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또다시 치열

한 정보 전쟁, 점점 더 뜨거워져 가는 주식투자 열풍, 어느 때보다

혼탁한 총선을 둘러싼 문제 등, 배타적 경쟁과 더욱 커진 욕망을 둘

러싸고 또다시 어지럽고 분주하다.



많은 사람들이 20세기를 인류와 생태계 전반의 존속을 위협한 ‘생

태위기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지금까지 인류가 인류 자신에게 그

리고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저지른 것이 과

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왔다. 그리고 21세기의 전세계를

관통하는 문제는 그 무엇보다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서 생태적 가치

와 원리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문제라고 제기한다.



그러나 오존 구멍이 넓어지고 빙하가 녹고 생물들이 사라져가는 뚜

렷한 위기상황에도 아랑곳없이 전세계가 점점 거대해지고 무시무시

하게 막강해지는 자본의 지배 아래 생태적 삶이나 생태적 사회와 관

계없는 것으로 치닫고 있는 듯한 상황은, 과연 21세기가 희망의 세

기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절망적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희망, 가능성은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내겠다는 의지를 불러

일으키는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부터 나온다고 믿는다. 그 마음

이란 다름 아닌 우리가 한 생명으로 참여하는 자연에 가한 폭력과

상처에 대한 절절한 뉘우침과 성찰이며, 그것은 또한 인간이 가하는

착취와 폭력의 대상인 자연의 비명과 상처를 듣고 느끼면서 그것이

결국 인간 스스로에게 가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것을 ‘생태적 감수성’이라고 말한다.



나는 나빠진 몸을 치료하려고 우연한 기회에 기공수련을 하는 과정

에서 처음으로 머리 속에만 들어 있던 그 ‘생태적 감수성’이라는

것이 무언지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쑤시고 아픈 온몸을 두드리고

천천히 호흡을 하며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려고 여러 달 공을

들이던 끝의 어느날이었다. 갑자기 나와 가장 절친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늘상 듣던 한숨소리가 처절한 아픔의 소리로 느

껴지면서 눈물이 한없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폭력과 상처를 가했는가, 내 욕망과 이기심이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파괴하였는가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그리고 그 후 그 아픔에 대한 감수성은 다른 사람에게로 확장되어

가고, 또 다른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로 확장되어 갔다. 그래서 퉁

명스럽게 대했던 부모님이나 물주기를 자주 잊어버렸던 로즈마리 화

분에 대한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물론 그것은 빠른 속도로 이루어

지는 것도 아니고, 노력을 게을리하면 무뎌지고 흩어진다. 나는 그래

서 매일 매일 진실한 마음으로 기수련을 하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몸 치료로 시작되었지만 다른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해 정성스럽고 애

절한 마음을 갖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면서, 나는 몸의 건강도 생

태적 감수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기

공 수련만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에 공을 들이는 모든 행위에서 나올 수 있다고 믿는

다.

어떤 초보 농사꾼은 힘겹게 논을 매다가 어느날 갑자기 남들에게 상

처를 주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잘못했습니다’라고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눈앞의 벼들은 그걸 그렇게 가슴에

담고 살았냐고 큰 위로를 해주더라고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 있는 것들의 소리를 들으려 하고 그 아픔을

느끼려 하는 몸짓들, 그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하고 자기 잘못을 성

찰하려는 간절한 노력들은 중요하다.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

이 많아지고 그 정성스런 ‘공(功)’이 쌓이고 쌓이면, 반생태적이고

살벌한 무한경쟁의 세상에서 생태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향해 가는

희망이 조금씩 꽃망울을 열어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윤숙/ 월간 '우리교육' 기자로 일하면서 생태·환경문제에 관심

을 가져오다 일본 오사카시립대학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생태사상을

공부,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여성환경연대’ 회원으로 에코페

미니즘 세미나팀에 참가하고 있다. 좁은 의미의 환경운동을 넘어 일

상생활 속에서 구현하는 넓고 깊은 의미의 생태주의적 실천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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