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증가하고 있지만 구속률 1%대 불과
아직도 ‘집안일’로 인식, 잘못된 ‘가정보호’ 깨뜨려야
미미한 처벌은 ‘죽거나 죽이거나’ 극단적 결과 불러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폐지하고 구속률 높여야

 

지난 8월 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가정폭력 예방의 날 보라데이 제정 기념행사에서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과 채시라 가족홍보대사 등 참석자들이 가정폭력 예방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빨랫줄 프로젝트는 가정폭력에서 구해달라는 메시지를 빨랫줄에 걸어 세상에 알리는 것에서 시작됐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8월 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가정폭력 예방의 날 보라데이 제정 기념행사에서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과 채시라 가족홍보대사 등 참석자들이 가정폭력 예방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빨랫줄 프로젝트는 가정폭력에서 구해달라는 메시지를 빨랫줄에 걸어 세상에 알리는 것에서 시작됐다. ⓒ뉴시스·여성신문

1997년 가정폭력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집안일’로만 여겨졌던 가정폭력이 사회적 범죄로 선언된 지 15년 이상이 지났지만 처벌 실태를 살펴보면 아직까지도 가정폭력은 ‘처벌되지 않는’ ‘집안일’로 남아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특히 가정폭력은 현 정부 들어서 ‘4대악’에 포함돼 여러 대책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가정폭력 발생건수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대운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 발생 건수가 2011년 6848건에서 2012년 8762건, 2013년 1만6785건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거 인원도 2011년 7272명에서 2012년 9345명, 지난해 1만8000명으로 늘었고, 올해 들어선 7월까지 검거 인원이 1만617명이었다. 가정폭력 신고 건수나 검거 인원 증가는 수면 아래에 있던 가정폭력이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처벌 수위’다.

최근 김주하(41) 전 MBC 아나운서가 가정폭력으로 남편 강모(43)씨와 소송을 벌여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지난 15일 남편 강씨는 가정폭력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 전 아나운서는 지난해 9월 남편 강씨에게 맞아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고, 2008년부터 남편의 폭력으로 4차례 전치 2주에서 4주의 상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남편 강씨는 김씨의 허락 없이 김씨의 재산을 조회한 혐의가 포착되기도 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단독 재판부는 “배우자에 대한 폭행은 신체적 상해를 입힐 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해 피해자에게 정신적 충격을 가한다”며 “피해자의 상해 정도가 가볍지 않고, 두 사람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데다 적법절차를 밟지 않고 김씨의 재산을 조회하려 해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판시 내용에서 가정폭력 범죄의 중대함을 언급하고 있으나, 실제 형은 집행유예에 그치고 있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집행유예 처벌이 너무 가볍다”면서도 “가정폭력 사건이 실제 실형을 받기까지 너무 힘든 점을 감안한다면 실형이 나온 것 자체는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신상희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장은 “전치 2주에서 4주의 상해가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은 폭력이 일상적이고 상당히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폭력의 심각성에 비해 가벼운 형이 내려졌지만 소송에서 실형까지 나오기 위해서는 (폭력으로) 죽음 직전까지 가야 하는 많은 경우에 비한다면 반가운 판결”이라고 말했다.

실제 가정폭력은 가해자가 구속되는 비율이 1%대에 불과해 ‘처벌되지 않는 범죄’로 불릴 지경이다. 유대운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정폭력 검거 인원은 1만8000명이었으나 구속 인원은 262명으로 1.46%에 불과했다. 가정폭력 상담 현장에서는 가정폭력의 기소율이 3분의 1도 되지 않으며, 불기소되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2013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부폭력 발생률은 45.5%에 이를 정도로 가정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나, 이 중 폭력 발생 당시 혹은 발생 이후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1.8%에 그쳤다. 이는 아직도 ‘집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은 가정폭력이 대다수이며, 드물게 신고한다 하더라도 기소도 어려운 뿐더러 구속 등의 강력한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어 ‘가정폭력’이라는 범죄로 제대로 된 처벌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 된다.

또한 가정폭력의 많은 경우 가해자들에게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지고 있어 더욱 문제다.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는 가정폭력 사건의 가해자에 대해 상담을 받는 조건으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하는 제도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가정폭력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며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상담을 조건으로 기소를 안 하면 가정폭력이 범법행위라는 인식이 없다”며 “상담 명령이 실효를 거두려면 가해자들에 대한 올바른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새정치민주연합 남윤인순 의원이 내놓은 대검찰청 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가해자들의 재범률이 최근 3년간 13%로 나타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처럼 가정폭력에 대해 미미한 처벌이 내려지는 것은 우리 사회에 여전한 ‘가정보호’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현행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목적 조항에도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해 환경의 조정과 성행(性行)의 교정을 위한 보호 처분을 함으로써 가정폭력 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한다고 명시돼 있다. 피해자와 가족의 인권 보호도 명시돼 있지만 법의 집행 과정에서는 ‘가정 보호’가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있어 심지어 흉기로 위협한 사건에서도 상담조건부 기소유예가 내려지기도 해 비난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미 폭력으로 깨진 ‘가정’에 대한 보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며 법의 목적 조항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가정폭력에 대한 이러한 미미한 처벌은 결국 피해자들이 공권력에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그 상황을 벗어나게 한다. 심각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피해 여성들이 가해 남편의 폭력으로 사망하거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해자를 죽이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즉, 공권력이 해결하지 못한 다수의 가정폭력은 결국 ‘죽거나 죽이거나’로 결론이 나는 것이다. 지난해 9월 25년간 남편에게 무차별적 폭행을 당하다 남편을 목 졸라 죽인 윤필정(가명·50)씨 사건도 마찬가지다. 니퍼나 스패너 등 작업공구로 머리를 맞아 두피가 찢어지고, 주먹으로 귀를 맞아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등 심각한 폭력에 시달려왔지만 윤씨와 두 딸에게 법과 제도는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남편을 살해함으로써 긴 폭력의 악몽을 끝낸 윤씨는 24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윤씨를 지원하고 있는 한국여성의전화와 변호인 측은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살인사건에 대해 정당방위 판결은 아직 없다.

일반 범죄와 달리 가정폭력에 대해 기소조차 하지 않거나, 상담을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하고, 피해자에게 가해자 처벌 불원에 대한 압박을 가하는 등의 사례들은 가정폭력을 사회적 범죄가 아닌 개인적인 집안일로 되돌려 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신상희 소장은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보복당할 것이 두려워 ‘처벌불원’을 하는 경우가 많고, 수사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이 ‘진짜 남편을 처벌하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피해자에게 부담을 준다”며 “일반적인 다른 범죄라면 피해자에게 가해자 처벌에 대해서 묻겠느냐”고 반문했다. 신 소장은 “가정폭력이 범죄라는 인식보다 아직도 부부 간의 갈등 정도로 생각한다”며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나 가정보호 처분이 아닌 즉각적인 처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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