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동안 ‘양심수 석방·국가보안법 폐지’ 외쳐
“자식이었기에 무서운 게 없었다”
“국보법 폐지돼야 민가협도 없어질 것”

 

조순덕(65) 민가협 상임의장은 자식이었기에 목숨도 아깝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은 22일 여성신문과 만난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조순덕(65) 민가협 상임의장은 자식이었기에 목숨도 아깝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은 22일 여성신문과 만난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어머니들의 주름살이 깊었다. 거리의 투사처럼 보이던 마흔 줄 여인들은 다들 70세를 훌쩍 넘겼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 간 자녀 때문에 알음알음 모여든 어머니들의 모임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가 29년째다. 민가협은 지난 16일 1993년부터 매주 거르지 않고 진행한 목요집회를 1000회째 맞았다. 어머니들은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며 여전히 거리에 있었다.

22일 명륜동 민가협 사무실에서 만난 조순덕(65) 민가협 상임의장은 어머니들 중 젊은 편으로 기운이 있어 계속 의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총학생회장이었던 아들이 96년 국보법 위반 혐의로 수배됐을 당시 아들로부터 짧은 쪽지를 전해 받고 민가협을 알게 됐다. 그는 “탑골공원에서 목요일 2시에 집회를 하니까 찾아가 보라는 쪽지를 받았다. 그곳에 가니까 나 같은 어머니들이 활동을 하고 있더라. 내 자식이 출소했다고 안 나오는 건 도리가 아니라 그러다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엄마였지만 어머니들은 대단하다. 남편이 감옥에 있었으면 그렇게는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식이었기에 목숨도 아깝지 않았다고 했다.

민가협은 1985년 12월 12일 정식 발족했지만 역사는 더 깊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학생들이 ‘빨갱이’란 명목으로 일제히 구속돼 고문을 당하고 징역형을 받았다. 이 중 인혁당계 8명은 사형을, 민청학련 주모자급은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았다. ‘구속자 가족협의회’가 모태다. 이후 남민전 사건, 재일교포간첩단 사건, 미문화원 사건 등으로 억장이 무너진 어머니들과 가족들이 민가협을 구성한다. 2000년 들어선 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운동 등 인권운동 전반에도 참여하고 있다.

“진보가 뭔지 보수가 뭔지도 몰랐지만 엄마들이 바뀌더라.” 아들이 수배 당한 89년께 민가협 활동을 시작한 김정숙(76) 어머니의 말이다. 그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이었다. 오로지 내 가정, 내 가족, 시부모님 공경하는 것밖에 몰랐다. 근데 어느 새 거리의 투사가 돼 있더라”고 말했다. 아들이 수배되기 전까지는 텔레비전에서 시위하는 모습이 나오면 혀를 찼던 평범한 엄마였지만 아들 소식을 찾아다니고, 엄마들과 항의하다 군홧발로 배를 차이고, 방패로 머리가 찍히기도 했다. 그의 아들이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이었던 김종석 전 의원이다. 

그는 엄마와 자식의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남들은 아들보고 데모꾼이라고 나쁘게들 얘기했지만 내겐 누구보다 훌륭하고 어디 하나 버릴 데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서운 게 없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은 엄마들이었다. 나중에 안기부 직원이 민가협 어머니들은 안기부도 무서워한다고 말하더라”고 말했다. 

엄마들은 죽기 살기로 움직이며 목소리를 냈다. 내 자식만이 아니라 ‘우리 자식들’ 면회 신청이 허가 날 때까지 내 자식, 남의 자식 가리지 않고 교도소 앞에서 열흘 동안 지내기도 했다. 각종 고문으로 몸과 마음이 황폐해져 돌아온 자식들을 볼 때는 더 악에 받쳤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찾아다니며 자체 수배한 것도 어머니들이었다.

그 사이 정권은 5번 바뀌었고 어머니들은 대부분 일흔을 넘겼다. 최근 목요집회에는 10여 명의 어머니들이 나오고 있다.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병든 몸보다 무관심을 안타까워했다. 매년 2번씩 서울대 축제 때 민가협 이름의 장터를 열고 있지만 젊은 학생들의 무관심을 느낀다고 했다. 조 의장은 “학교에서 장터를 열면 ‘민가협이 누구예요?’라고 묻는 이도 있고, 심지어 국회의원 보좌관이 민가협이 뭔지 모르기도 하더라”고 씁쓸해했다.

그는 “양심수가 1500~2000명일 때보다 지금 줄어들었다고 해도 양심수가 있다”며 “국가보안법 때문인데 단 한 줄도 개정되지도 철폐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 때부터는 군사정부 때보다 더 말을 못 하게 한다. 국가보안법 없어질 때 민가협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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