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연구자·활동가 등 70여 명 한자리에
17~18일 강릉 한국여성수련원에서 개최
세대 간·주체 간·지역 간 토론의 활성화 제안

 

‘한국 여성운동의 전환을 꿈꾸다’라는 주제로 지난 17, 18일 양일간 강원도 강릉시 한국여성수련원에서 ‘2014 여성회의’가 열렸다. ⓒ여성신문
‘한국 여성운동의 전환을 꿈꾸다’라는 주제로 지난 17, 18일 양일간 강원도 강릉시 한국여성수련원에서 ‘2014 여성회의’가 열렸다. ⓒ여성신문

여성주의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2010년대 ‘여성주의’의 현실과 흐름,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성찰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여성재단이 주최한 ‘2014 여성회의’에 모인 70여명의 연구자, 활동가들은 갈수록 외연이 확장되고 있는 ‘여성주의’의 흐름을 확인하고, 다양한 분야의 여성주의 지식과 네트워크 안에서 자신의 ‘여성주의’를 위치 짓는 작업을 진행했다. 여성주의가 전형적으로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이들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에 기반해 운동의 맥락을 드러냄으로써 지속가능한 여성주의 운동의 가능성을 논의했다.

‘한국 여성운동의 전환을 꿈꾸다’라는 주제로 지난 17, 18일 양일간 강원도 강릉시 한국여성수련원에서 열린 이번 여성회의는 3년 전 열린 ‘2011 여성회의’에 이은 두 번째 여성회의다. 이번 여성회의는 “여성운동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는 변화와 역동의 시기에 한국 여성운동이 어떤 도전과 과제를 안고 있는지, 여성운동의 영향력을 넓히고 지속가능한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실천은 무엇인지 함께 성찰하고 이야기를 모으기 위한” 취지로 개최됐다. 3년 전 처음 열린 여성회의는 지난 40여 년간의 여성운동을 되돌아보고 ‘여성운동의 위기’에서 연대를 통한 향후 10년의 여성운동을 준비하기 위한 목표로 시도됐었다.

17일 열린 개회식에서 조형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이번 회의는 ‘2011 여성회의’의 성과 중의 하나”라고 말문을 열었다. 조 이사장은 여성운동의 변화상을 설명하며 “2010년 이후 풀뿌리 운동의 확산과 더불어 지역에서 여성들이 환경, 경제, 안전, 교육, 돌봄과 공동체 복원 등 삶의 문제를 운동 이슈로 들고 나오면서 여성문제가 확대되고, 여성들의 주체성과 파워가 가시화되고 있다”며 “이런 변화는 한국 여성운동의 자연스러운 진화, 성숙의 단계”라고 평가했다. 또한 조 이사장은 여성운동의 실천과 자체 점검, 성찰에 대해 “건강하고 적절한 현상”이라며 “여성학과 여성운동의 협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2014 여성회의’에서여성주의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은 2010년대 ‘여성주의’의 현실과 흐름,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성찰하고 논의했다. ⓒ여성신문
‘2014 여성회의’에서여성주의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은 2010년대 ‘여성주의’의 현실과 흐름,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성찰하고 논의했다. ⓒ여성신문

개회식에 이어 진행된 1부 세션에서는 유성희 한국YWCA연합회 사무총장의 사회로 ‘여성운동의 진단과 전망’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류지연 전 숭실대 총여학생회장은 ‘20대 페미니스트와 총여학생회운동’에 대해, 박인혜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여성인권 이슈의 제도화, 전희경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여성, 여성주의, 정치적 액티비즘’에 대해,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정책국장은 ‘자급의 정치’에 대해 발표를 이어갔다. 

이들에 따르면, 젠더에 기반한 단일한 ‘여성’ 주체가 해체되고(박인혜), 여성운동의 세대별 집단성 또는 세대 간 연계성이 약화됐으며(전희경), 현재를 진단하고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마땅한 담론도 찾기 어려운데(류지연), 젠더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에 대한 여성주의 행동의 확장을 요구받고(이안소영) 있다. 따라서 이 변화상을 반영하는 오늘의 여성주의적 지식과 운동력의 재생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운동 주체들의 토론과 상호 협력적 모색이 절실하다. 참가자들은 이를 실천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7개의 분과로 나뉘어 집중 토론했다. 

7개 분과는 ‘여성운동은 왜 마을로 들어가야 하는가’ ‘사회적 이슈(세월호, 밀양 등)와 여성주의는 어떻게 만날 것인가’ ‘사회적 경제, 여성들에게 희망이 될까’ ‘거버넌스와 제도화 전략은 여성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여성학과 여성운동의 농염한 대화: 그리고를 넘어서’ ‘여성운동의 활동가 재생산, 어떻게 할 것인가’ ‘농업과 먹거리의 위기, 여성운동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로 구성됐다.

둘째 날 7개 분과별 토론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단절과 소통에 대한 의견이 많이 제시됐다. 김경희 이화여대 객원연구위원은 “소통의 부족이 여성운동에서 심각한 게 아닌가”라며 “여러 축의 단절 중에서도 제일 심각한 것은 세대 간 단절”이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어 “활동가와 연구자와의 단절, 상근 활동가와 비상근 활동가와의 단절, 회원과 상근자와의 단절 등 단절을 이을 수 있는 소통 방식이 궁금하고, 여러 단절을 이을 수 있다면 여성운동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박경 대화문화아카데미 프로그램팀장은 “세대 간 단절의 전제는 서로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라며 “세대 간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저 친구의 고민에 대해 모를 수 있다. 같이 듣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원을 지역에 우선 분배하거나 본부와 지역이 결합한 여성주의 모델을 개발하자는 중앙과 지역의 관계에 대한 대안들도 제시됐다. 장이정수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는 “여성운동에 있어서 자원 배분이 지금은 서울, 중앙 단체에 집중돼 있다”며 “전체적 운동의 지향과 방향을 지역을 살리는 쪽으로 가지 않고 지방을 소외시키면 여성주의의 확산은 이뤄지기 어렵다. 지부라는 개념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전희경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중앙과 지역 간의 소통에 대해서도 중앙이 지역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할 것이 아니라 “진짜 핵심은 중앙에서 나온다는 것을 해체하지 않으면 계속 변화가 없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끝으로 식량과 생태 위기, 세월호와 밀양 등 사회적 현안에 대한 여성주의적 대응과 관련해서도 토론이 있었다. 몽 언니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여성주의자들이 여성단체 구조가 아닌 다른 인권운동의 영향에 힘입어 성장했고”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는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에 여성운동의 성과가 있고 그것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쌀, 물, 여성의 노동에 대해 이것들을 아우르는 사회권에 대해 여성운동에서 논의가 없는데 이런 것들을 해야 하지 않는가” 라고 제안했다. 

한편 참가자들은 “응원과 지지를 얻었다”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이들을 만나 에너지와 비전을 얻고 간다” “사고가 확장됐다” “주체적으로 운동할 힘을 얻었다”는 소감과 함께 여성주의자 선배들의 기록들의 아카이빙, 대중과의 소통, 다른 단체들과의 소통의 필요성, 활동가 재생산 및 여성주의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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