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만난 사람들. 왼쪽 상단부터 매 끼니마다 챙겨주고 싶어하는 집주인 난시와 가족들, 춤추는 즐거움을 알려준 우리동네 최고의 댄서, 알만도와 그의 아내. 막내 동생처럼 애교 많은 테레사, 마지막 사진은 하루라도 안보면 한국갔었냐며 섭섭해하는 깐디도, 모두 쿠바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여성신문
쿠바에서 만난 사람들. 왼쪽 상단부터 매 끼니마다 챙겨주고 싶어하는 집주인 난시와 가족들, 춤추는 즐거움을 알려준 우리동네 최고의 댄서, 알만도와 그의 아내. 막내 동생처럼 애교 많은 테레사, 마지막 사진은 하루라도 안보면 한국갔었냐며 섭섭해하는 깐디도, 모두 쿠바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여성신문

한동안 아팠다. 날씨부터 먹거리까지 40년간 몸에 익은 환경과는 너무도 다른 환경에 오랫동안 감기를 앓았고 약간의 우울감도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활짝 열어두었던 방문을 슬그머니 닫고 들어가 무언가 부탁할 거리를 들고 아무 때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친구들을 돌려보낼 핑계를 찾기도 했다. 나는 이방인일 뿐인가. 날 찾는 발걸음은 늘었지만 외로웠고 필요에 의한 관계만이 지속되고 있는 듯해 씁쓸했다.

쿠바인에게 외국인은 돈일 뿐?

얼마 전 한 친구가 떠났다. 다시는 쿠바에 오지 않겠다 선언했다. 아메리카 대륙 일주 중 쿠바에 매료된 그는 모든 여행 일정을 취소하고 9개월째 체류 중이었다. 살기는 어렵지만 삶을 즐길 줄 아는 이곳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행복했고 경제 수준의 극심한 차이로 얻어지는 이득을 즐겼다. 여행자로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정착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한 여자를 만났고 결혼했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했다. 말 잘 통하는 친구 사이였던 그들은 결혼을 통해 얻어지는 장점을 계산했다. 하지만 서로 기대했던 정도에 차이가 있었다. 두 사람은 충돌하기 시작했고 싸움은 연일 계속됐다. 결국 그는 ‘쿠바’라는 나라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챙겨 들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쿠바인에게 외국인은 돈일 뿐이야. 너도 조심해.”

그가 남긴 말이다. 처음 들은 말은 아니다.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들어왔다. 처음엔 ‘친구 되기 어디 그리 쉽나’ 과욕이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여행객이 머무르는 시간은 일주일에서 한 달. 그 짧은 시간, 만나게 되는 사람이란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고, 친구로 다가와 무언가를 팔거나 소개비를 챙기거나 바가지 요금을 씌우려는 장사치는 어디에나 있다. 쿠바만의 문제도, 외국인과 자국민 사이의 문제도 아니다. 어디라도 잘 모르는 곳에 가게 되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이들이 장사치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여행지의 사람을, 그 나라의 정서를 단편적인 경험만으로 규정짓곤 한다. 또 반복해서 듣는 말은 확실히 교육 효과가 있다. 여기에 약간의 경험이 더해지면 인식은 더욱 확고해진다. 반면, 믿지 못하는 것은 쿠바 사람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이방인은 어떤 이미지로 각인돼 있을까. 언제든 훌쩍 떠나버릴 이방인이기에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 역시 이방인이기에 ‘떠남’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닐까. 그의 모습은 나의 미래가 아닐까. 이러저러한 생각에 마음도 복잡하게만 꼬여 갔고 혼자 있는 시간은 늘어만 갔다.

당당하게 부탁하고 기꺼이 도울 수 있다면

“은주, 넌 혼자가 아니야. 내가 있고, 칸디도가 있고, 비올레타, 마갈리가 있는데 왜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어?”

카리다드가 노했다. 누구에게도 도움 청하지 않고 혼자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바빴고, 그녀를 찾아가지 못했다. 그동안 이사를 결정하고 짐을 옮겼다. 필요할 때만 그녀를 찾는다 여길까 염려됐다. 또 작은 도움이라도 마음의 빚이 오래가는 난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쪽을 더 선호한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떠듬떠듬 ‘귀찮게 하기 싫었다’ 설명해 보았으나 그녀는 ‘귀찮을 거라 생각한 것’에 더 크게 실망했다. 그때 떠올랐다. 믿지 못하고 거리를 둔 것은 그들이 아닌 나임을.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해. 배고프면 언제든 밥 먹으로 와.” 그녀에게서, 또 다른 친구들에게서 항상 듣는 말이지만 한 번도 진심으로 여긴 적 없었다. 그저 길 가다 우연히 친구를 만났을 때 주고받는 ‘언제 술 한잔 해’ 같은 인사치레로만 여겨왔다. 부탁거리를 들고 나타나는 친구들은 나를 친구로 인정했기 때문이고, 나도 그들처럼 아무때고 찾아와주길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친구가 있는데 무엇이 눈 멀게 했을까. 다시 찾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카리다드가 있는데,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한국 갔었냐며 서운해하는 칸디도가, 끼니마다 챙겨주고 싶어하는 난시가, 비올레타가, 마갈리가 있는데 말이다. 친구가 뭐 별건가. 서로 가진 것을 나누고 당당하게 부탁하고 기꺼이 도울 수 있으면 우린 이미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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