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
경찰 출신의 30대 여성 지도자, 부정부패 척결 추진
주변국과의 관계 정상화로 국제적 인정받는 데 주력
2012년 국제 여성정상회의 개최해 여성능력 강화 힘써

 

올해 2월 아티페테 야햐가 코소보 대통령이 요르단을 공식 방문한 가운데 요르단 왕실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올해 2월 아티페테 야햐가 코소보 대통령이 요르단을 공식 방문한 가운데 요르단 왕실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7월 말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한 코소보의 이슬람 전사가 시리아인 포로를 참수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코소보의 아티페테 야햐가 대통령은 이 사건을 “짐승이나 다름없는 정진병자의 소행”이라며 안보 위해 요인으로 규정하고 최우선 과제로 다루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는 이슬람교도가 80%를 차지하는 신생국 대통령으로서 인권을 더 중시하는 합리적 시각을 보여준다.

아티페테 야햐가 대통령을 세계여성지도자회의(Global Summit of Women·GSW)에서 만났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다. GSW는 기업 여성 임원 쿼터제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는 1000여 명의 정치경제 분야의 글로벌 여성 리더들이 모이는 국제회의로 지난해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올해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려 우리나라 대표단도 참석했었다. 이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코소보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야햐가 대통령의 진취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코소보는 유럽의 화약고라 불릴 정도로 분쟁으로 얼룩져온 나라다. 발칸반도에서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에 둘러싸인 인구 170만 명 남짓한 작은 국가이기도 하다. 2008년 2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2012년 9월 10일 주권을 획득한 알바니아계 신생국으로서 일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000달러 정도. 1998년의 소위 ‘코소보 사태’는 코소보의 독립을 저지하려는 세르비아의 무차별 학살과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렇게 유혈충돌이 일어난 원인은 이슬람교도인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전 인구의 80%인 코소보가 동방정교인 세르비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바랐기 때문이다. 원래 동방정교였던 이 지역은 1455년에서 1912년까지 이슬람인 오스만제국 치하에 들어갔고, 세르비아인들은 500여 년간 동방정교 신앙을 지켰으나 알바니아인들은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전후 유고연방 치하에서 자치권을 가진 세르비아 치하에서 알바니아 분리주의 반군들은 독립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8년 3월 초 알바니아 분리주의 반군들이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하면서 코소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세르비아 경찰은 즉각 반격에 나서 2000여 명의 반군과 주민들을 대량 학살했고 ‘살인, 강간, 방화, 학대 등 체계적인 공포 정책’으로 대응했다. 코소보 해방군은 1991년 창설되어 무력항쟁을 중시했기에 미국은 1998년까지 이들을 테러리스트 그룹으로 간주했었다. 유엔은 유고연방에 무기금수조치를 내리고 미국과 유럽연합 역시 이를 ‘인도적 전쟁’으로 규정해 개입을 선언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병력을 배치해 잔혹한 인종 청소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협상이 실패하자 나토는 유고연방을 공습했고 1년 후인 1999년 6월 세르비아 의회는 유엔의 평화계획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기간 코소보 해방군도 장기 거래를 목적으로 포로를 고의로 살해한 의혹이 있어 유럽연합에 의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렇듯 험난한 과정을 거쳐 2008년 독립에 도달한 신생국 코소보의 제4대 대통령 아티페테 야햐가는 올해 39세의 젊은 여성으로 경찰 출신이다. 발칸반도를 통틀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의 무소속 대통령이기도 하다.

1975년 유고슬라비아의 다코비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2000년 프리슈티나 법대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혼란스러운 코소보 사태와 여성에 대한 강간 및 폭력을 목격하면서 중요한 것은 평화와 발전이고 이를 위해서는 경찰이 되어 질서를 유지하고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해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영국 레체스터 대학교에서 경찰경영 및 형법자격증 과정을 수료한 후 경찰이 된다. 그는 여느 남성 못잖은 체력과 축구선수 못잖은 튼튼한 허벅지 근육을 가진 능력 있는 경찰이었다. 차근차근 승진 과정을 밟아 동남유럽 여성 중 최고 계급인 소장이 됐으며 코소보 경찰국의 부국장에 임명됐다.

코소보의 평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유럽연합의 독일은 그를 코소보의 평화를 위한 인재 중 한 명으로 발굴하여 조지 마샬 안보연구 센터에서 훈련 받을 기회를 제공했다. 미국 정부 관리들과 외교관 역시 그를 평화를 위한 인재로 주목하고 주요 행사 때마다 초청해 미국 고위인사들에게 소개했고, 미 연방수사국(FBI)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받도록 주선했다. 이곳에서 경찰로서의 훈련을 받으면서 조지 부시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들이 인터넷에 공개된 후 전격적으로 대선 후보로 물망에 오르게 된다.

2011년 민주당, 민주연맹당 및 신코소보 연맹당은 야햐가를 대선 후보로 공동 지명해 공표했고 미국대사가 이를 지지한다고 공표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이 젊은 대선 후보의 정치성향을 모르고 있었다. 의회에서 실시된 1차 선거에서 100명의 의원 중 80명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취임연설에서 야햐가는 자신의 1차 목표는 유럽연합(EU)과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라고 했고, 민주국가로서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데 주력했다. 또한 청렴 위원회를 만들어 부정부패 척결을 추구했다.

야햐가 대통령은 또한 여성의 능력 강화를 추진해 2012년 국제 여성정상회의 ‘변화를 위한 파트너십–여성의 능력강화’를 주최했고, 유럽·북미·아프리카와 중동의 200여 명의 여성이 참여해 그 결과 여성의 정치참여, 경제자원 및 안전과 정의에 대한 권리를 확인하는 ‘프리스티나 원칙’이 선포됐다. 야햐가는 전쟁 중에 강간당한 여성들을 위한 법적 지원, 보상금 지급 및 가해자 처벌 등을 강력히 추진하기도 했다.

분쟁의 화약고인 동방정교와 이슬람 간 관계에 대해서는 관용과 상호 존중을 강조해 알바니아인의 54%, 세르비아인의 69%, 기타 인종의 75%가 그녀의 합리적인 인종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잔인한 인종 청소와 여성에 대한 폭력의 공포정치 속에서 의연히 일어선 여성 아티페테 야햐가, 그는 신생국 코소보가 종교적 극단주의와 분쟁보다는 합리성과 개방성을 통한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묵묵히 정치지도자의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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