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의 예술활동이 인생 끝까지 이어지길
젊은 작가의 예술활동이 인생 끝까지 이어지길
  • 엄수아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4.10.02 13:49
  • 수정 2018-01-24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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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팔리는 그림은 결국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예술인 후원하다 보면 보고 싶은 이들이 생깁니다”

 

2014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을 수상한 이충희 에트로(ETRO) 대표. 사진 속 그림은 청담동 사옥에 있는 백운갤러리에서 걸린 인세인박의 작품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4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을 수상한 이충희 에트로(ETRO) 대표. 사진 속 그림은 청담동 사옥에 있는 백운갤러리에서 걸린 인세인박의 작품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백운갤러리(관장 이충희·에트로 대표)가 올해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을 수상했다. 백운갤러리 관장인 이충희(59)씨는 순수미술을 활발히 지원하고 발전시키는 데 힘써왔고, 매년 ‘에트로미술상’에 선정된 많은 여성 작가들의 예술활동을 후원하고 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에 선정됐다. 

수상 소식을 들은 이 대표는 “여성 예술인만을 특정해서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남녀 관계없이 후원하는 데 거의 여성이 많긴 하다”며 수상 소식에 멋쩍어했다. 

1일 이 대표를 만난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백운(白雲)갤러리’는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에트로 제품을 수입하는 ㈜듀오 사옥이었다. 그러나 회사 이름이 아닌 갤러리라고 적힌 6층 건물에는 상품보다는 그림이 더 많이 보였다. 실제 건물 한 층을 갤러리로 쓰고 있다. 대관료 없이 30~40대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 공간으로 쓴다고 했다. 때마침 지난해 에트로 미술대상을 수상한 인세인박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이 대표는 ‘오랜만에’ 수상한 남성 작가였다고 소개했다.

이 대표는 2012년 시작한 에트로 미술대상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그는 “왜 뽑혔지? 하는 작품도 있어요. 제 취향과는 다르게 뽑히더라고요”라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 그래도 예술인 후원자로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거듭 어떤 작품을 좋아하냐고 묻자 “저는 미술대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심사위원들이 결과를 발표하면 올해는 이런 작품이 뽑혔구나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작품 공고 기준인 작가 나이 만 30~40세 외에 달리 가이드라인이 없었다. 10명의 심사위원 중 1차 3명, 2차 3명이 작품을 심사하고 선정한다. 형평성을 위해 적어도 심사 때 평론가, 작가, 큐레이터가 들어가도록 한다.

 

2014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을 수상한 이충희 에트로(ETRO) 대표가 해외 벼룩시장에서 구매한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4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을 수상한 이충희 에트로(ETRO) 대표가 해외 벼룩시장에서 구매한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 대표는 미술상 수상에 영향이라도 미칠까 자신의 취향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방에 있는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작품들이 시대를 넘나들고 화풍도 다양했다. 자신이 미술을 전공하거나 전문가가 아니란 점을 강조하면서 “제 취향을 알 수 없죠? 정말 다양한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후원을 시작하면서 마음고생도 있었다. 기업가인 이 대표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갤러리도 그런 용도로 마련했다. 보여지고 팔리는 그림을 젊은 예술인들에게 강조하면, 예술 세계를 건드렸다며 냉담한 반응 일색이라 안타깝다고 했다. 20~30대 젊은 예술가들이 50대 넘어서까지 활동하는 비율이 극히 적은 것이 현실. 그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일했기에 어떤 영역이든 ‘생존’을 강조한다. 군부대와 대학 강연에서도 성실함과 절박함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소개한다.   

“젊은 작가들의 그림은 한해 한해 달라요. 그림이 전혀 딴판이 되죠. 같은 작가라도 30·40·50대에 그린 작품 평가는 천지차이입니다. 안 팔리면 결국 창고로 가는데 그런 그림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저희가 고객에게 판매하는 옷과 가방도 매장에 있을 때 가장 예쁩니다.”

그림을 사는 사람들은 걸어두고 보기 위해 산다는 이야기다. 누군가의 안방이나 거실에 놓일 사고 싶은 그림을 전시해달라는 주문도 듣는다. 젊은 작가들과 만날 때마다 이런 조언을 하다보니 서로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그는 매년 ‘에트로미술상’으로 지급하는 총 상금 5900만원이 도화선이 되길 바란다. 작가의 작품 활동이 인생 끝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에게 그림은 즐거운 것이다. 해외 출장을 가면 현지 벼룩시장 일정까지도 미리 꼼꼼히 체크한다. 자유롭게 길거리에 형성된 벼룩시장을 몇 바퀴 돌면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속으로 고른다. 가격은 10만원에서 50만원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그림들이 지금 이 대표의 방을 채웠다. 흥정하는 재미도 있다면서 눈길을 끌고, 갖고 싶다는 느낌을 주는 그림을 찾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10월 중에는 백운갤러리 한편에 자신이 수집한 벼룩시장 그림들을 전시할 계획이다.

그림을 즐기는 만큼 예술인 후원도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고 있다. 그는 “여유 있는 범위 내에서 돕는 것이지 그것을 넘어서까지 도울 수는 없어요. 저도 기업가인데 기업가의 생명은 결국 안 망하는 거니까요”라고 말했다. 기부도 예술가 후원도 자신이 줄 수 있는 만큼, 자신에게 의무가 아니라 행복을 주는 크기 만큼 하고 있었다.

그는 최근 한 지인이 “우리 관계 오래 가자”고 말해서 “오래가 아니라 끝까지 가는 겁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에게 인간관계는 오래가 아닌 ‘끝까지’다. 그는 예술인 후원에 대해서도 “힘든 일이고 ‘계속 해야 하나’ 하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계속 보고 싶은 이들이 생기네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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