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위한 촉각점자 그림책 만드는 박귀선씨

 

“글을 배우지 않아도 그림책은 볼 수 있는 것처럼, 눈으로 볼 수 없더라도 만지면서 느낄 수 있는 점자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경기도 양주의 바느질 카페 ‘메르케사’는 매주 화요일 오전 문을 닫는다. 박귀선(42·사진) 메르케사 대표가 점자책을 만드는 시간이다. 바느질을 가르치며 손바느질 DIY 용품 온라인 쇼핑몰 ‘꼼지닷컴’도 운영하는 그는 재능 기부로 사랑을 실천해 오고 있다. 그는 올해 전국에 있는 점자도서관을 비롯해 맹학교에 직접 만든 책 ‘아기새’ 20권을 기부했다. ‘아기새’는 바느질로 한땀 한땀 수놓은 촉각점자 그림책이다. 가로·세로 각 40㎝, 두께 13㎝로 제작된 책에는 날지 못하는 아기새가 주위의 응원으로 힘찬 날갯짓을 하게 되는 성장 이야기다. 

“시각장애인은 점자를 배우기 전까지 책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한글을 배우지 않더라도 그림책은 볼 수 있잖아요. 이 점이 저는 참 안타까웠습니다. 사물의 특징을 만지면서 느낄 수 있는 촉각 도서는 점자를 배우지 않았거나 두려워하는 시각장애인들도 볼 수 있습니다.” 

박씨가 점자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06년, 한 시민단체가 점자기부책을 만드는 재능기부 작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면서부터다. 그는 1년가량 맹학교에 가서 점자그림책에 대해 배우고 책을 기획·개발해 지난해 본격적으로 제작에 나섰다. 

두 아이를 키우는 그는 “맹학교 아이들이 옆에 뭐가 있어도 못 보는 게 부모로서 마음이 아팠다”며 “바느질을 좋아하고 자신이 있으니 그림책을 만들 수 있겠다 싶어 선뜻 나섰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한장 한장 만들 때마다, 직접 맹학교 교사에게 검수를 받고 고쳐나갔다. 작업에 드는 돈은 쇼핑몰 수입과 박씨가 냈던 바느질 책의 인세를 통해 해결했다. 점자 필름지는 서울점자도서관 관장이 무상으로 지원을 했다. 

“무엇보다도 원단과 재료에 신경을 썼어요. 아이들이 직접 만져야 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나뭇가지를 표현했는데, 검수하는 선생님이 손에 찔리셔서 다른 재료를 찾아야 했어요. 폭신한 털 원단으로 표현해야 하는 엄마새는 바느질할 때 털 날림이 심해 마스크를 쓰고 해야 했어요. 만드는 과정이 참 즐거웠어요. 같이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도와주시는 분들도 전국 방방곡곡 많았고요. 완성기간을 2년 잡았는데 1년2개월 만에 제작이 끝난 이유도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제가 만든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박씨는 ‘아기새’에 이어 새로운 촉각 그림책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추가적인 개발 자금은 크라우드 펀딩(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한 모금 활동) 사이트를 통해 마련할 생각이다. “맹학교 아이들이 입학하면 1년간 바지 지퍼를 올리고 신발끈을 묶는 방법을 배운다고 해요. 이 방법을 책으로 만들어 보급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박씨는 자신이 만든 책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촉각 그림책은 남녀노소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들도 동화책을 읽으면서 자신들이 ‘소외된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고요. 손끝으로 느끼는 세상이 아름다워지길 바랍니다.”

 

박씨가 만든 책 아기새를 읽는 시각장애인.
박씨가 만든 책 '아기새'를 읽는 시각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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