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가 무법부(無法府)로 전락
기형적 국회 구조 바꾸는 것이 급선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329회 국회(정기회) 4차 본회의 개의를 앞두고 이완구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관련 본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대신해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보고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329회 국회(정기회) 4차 본회의 개의를 앞두고 이완구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관련 본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대신해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보고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세월호 참사(4월 16일)가 발생한 지 167일 만인 지난 9월 30일 세월호특별법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여당 몫 특검추천위원 2명에 대한 야당·유가족의 사전 동의’를 골자로 한 8월 19일 ‘2차 합의안’을 토대로 최대 쟁점이었던 특검 후보군 4명을 여야 합의로 추천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다만 유족이 추천 과정에 참여할지는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여야 모두 국회 파행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실제 법 제정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이번 여야 3차 협상에서도 세월호 유족들을 배제한 채 ‘특별법을 합의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표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특별법 여야 최종 타결안에 대해 거부한다고 발표한 것도 정치권에 큰 부담이다.

5개월 이상 끌어온 세월호 정국은 ‘정치 실종, 국회 마비’라는 한국 정치의 부끄러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법을 만들어야 할 입법부가 무법부(無法府)로 전락했고, 국회의원들은 국회의 존립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들을 거리낌 없이 행했다.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현 국회 제도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작년 한 해 국회의 활동에 대해 응답자의 81.0%가 ‘잘 못했다’고 평가한 반면 ‘잘했다’는 평가는 11.6%에 그쳐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국회의 활동에 대해 잘 못했다고 평가한 국민들은 그 이유로 ‘당리당략’(35.5%)을 1순위로 꼽아 정치권이 민생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국민들의 국회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인식이 작금에 국회 무용론을 넘어 국회 해산론까지 등장하는 배경이다. 한국 국회의 가장 큰 문제는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 국민을 대표할 의원들이 지도부의 눈치만 보면서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의회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동등한 자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회에 구속력 있는 법을 만들기 위한 회의체”이다. 그런데 국회의 주역이 돼야 할 의원들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당론에 따라 움직이는 불쌍한 존재로 전락했다. 물론 의원들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세비를 꼬박꼬박 챙기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이다.

그러데 본질은 의원들이 자율성과 책임성을 갖고 의정활동을 할 수 없는 기형적 국회 환경이 더 큰 문제다. 미국의 저명한 의회정치 연구 학자인 하버드 대학의 케네스 솁슬(Kenneth Shepsle) 교수는 ‘구조 유인 균형 상태(structure-induced equilibrium)’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울타리를 높게 쌓아놓고 쪽문을 하나 만들어 놓은 다음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험으로 몰아세우면 그들이 취하는 행위는 쪽문으로 향하는 것밖에는 없다는 비유를 들어 이 개념을 설명한다.

여기서 울타리는 구조에 해당되는 것이고 쪽문을 행해 가는 행위는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형적인 국회 조직이 바뀌지 않으면 의원들은 생존을 위해 퇴행적인 적응 능력만 키우게 된다. 따라서 한국 국회가 발전적 진보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기형적 국회 구조를 바꾸는 것이 급선무다.

그 핵심에 모든 국회 의사 일정을 여야 원내 교섭단체의 협의에 의해 처리하도록 돼 있는 국회법 규정이다. 국회법 전체에서 26개 항목에 걸쳐 모든 주요 의사 일정과 결정은 여야 원내 교섭단체의 협의에 따라 처리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세월호특별법과 같이 민감한 정치 현안을 둘러싸고 여야 어느 한쪽이 협상을 거부하면 국회는 올스톱 된다. 본회의만이 아니라 모든 상임위 활동도 중단된다.

따라서 국회는 이런 반의회주의적 규정을 바꾸어 미국과 같이 사전에 정해진 의사 일정에 따라 자동으로 국회가 열릴 수 있도록 개혁해야 한다. 매년 12월에 국회의장이 연중 상시 운영을 위한 의사 일정 캘린더를 만들어 여야 원내교섭단체에 통보해 실행하면 된다.

국회법 제76조 3항에 따르면 “의사 일정 중 회기 전체 의사 일정의 작성에 있어서는 국회운영위원회와 협의하되, 협의가 이뤄지지 아니할 때에는 의장이 이를 결정한다”고 돼 있다. 국회의장의 이런 의사 일정의 작성 권한을 강화해서 더 이상 국회가 장기간 공전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국회의원은 헌법 제46조 4항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규정을 가슴에 깊이 새겨 지금부터라도 ‘국민 우선의 민생 국회’ 정착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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