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경찰 출석 요구에 묵묵부답… 사실 확인 회피
여성단체 “전직 국회의장 인권 감수성 수준에 놀라움과 분노”
야당들 “새누리당, 특단의 예방조치 취하라”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골프장 경기보조원 성추행으로 고소당했다. 사진은 2012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전달 의혹으로 선거공판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골프장 경기보조원 성추행으로 고소당했다. 사진은 2012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전달 의혹으로 선거공판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새누리당 상임고문 박희태(76) 전 국회의장이 사실 인정은커녕 경찰 출석 요구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우리 사회 고위 지도층의 낮은 성의식 수준을 드러냈다.

박 전 의장은 지난 11일 강원도 원주에 있는 한 골프장에서 23세 경기보조원 A씨의 팔, 등, 가슴을 만지는 등 추행해 고소당했으나 ‘손녀뻘 같아서’ ‘귀엽다는 수준’ 등의 궤변을 늘어놓을 뿐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그는 캐디 A씨가 고소하기 전에는 성추행 사실을 전면 부인했으나 고소 사실이 일파만파 퍼지자 ‘귀여워서’라며 “손가락 끝으로 가슴 한번 툭 찔렀다는 이런 이야기다. 그것을 이제 만졌다고 표현”이라고 신체 접촉이 있었던 점을 인정했다.

여성단체들은 즉각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 10여 개 여성단체들이 17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성폭력 근절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은 현재에도 국회의장까지 지낸 정치인이 이처럼 낮은 수준의 인권감수성과 성 인식으로 여전히 성폭력을 저지르고 있음에 놀라움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고 비판했다.

20년 넘게 법을 만들어 온 국회의원이자 고검장 출신의 해명이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황당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17일 트위터를 통해 “손으로 가슴을 찌르기만 했다? 원래 대부분의 치한들이 그래요. 손으로 엉덩이를 만지기만 하고, 손으로 허벅지를 더듬기만 하고… 그리고 그게 다 귀여워서 그러는 거죠”라고 박 전 의장의 해명을 비꼬았다. 성추행이 엄연히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범죄임을 알면서도 엉뚱한 해명으로 논란을 키운 셈이다.

야당들은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정부여당 인사들의 성추행·성희롱 논란을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위원장 남윤인순)는 14일 성명을 통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고 있다”며 “세월호 사고와 국회 파행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의 상임고문은 골프나 치고, 성추행 사건까지 일으키고 있다. 집권여당의 정국 상황 인식 수준에 기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김제남 원내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사건을 일으킨 인사들을 그때그때 징계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새누리당을 비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사건 발생일부터 현재까지 박 전 의장의 성희롱 고소건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사회 지도층의 성추행 사건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새누리당에서만도 최근 모욕죄 무죄 선고를 받은 강용석 전 의원의 ‘아나운서’ 발언을 비롯해, 안상수 전 원내대표의 ‘자연산’ 발언, 최연희 전 사무총장의 여기자 성추행과 정부에선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성추행으로 대변인직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지도층이지만 성희롱·성추행 사실이 문제되자 초기에 일관되게 발뺌했다. 특히 최연희 전 의원은 “식당 아줌마로 착각했다”고 해명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은 성추행을 해도 되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박 전 의장 역시 현재 ‘성추행은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있다.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한 사회 원로가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것도 불명예스럽지만 ‘터치’는 있었지만 성추행은 아니란 해명 또한 문제란 지적이다.

31년 캐디 경력이 있는 김경숙 전 전국여성노조 99컨트리클럽 부회장은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예쁘다고 누가 자기 딸하고 손녀한테 가슴을 꾹 누르면, 박희태 의장은 그거 용납할 수 있나?”라며 “제대로 된 세상이라면 이 일도 제대로 처리가 돼야 한다”고 제대로 된 처벌을 강조했다.

김금옥 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사회 지도층인 정치인은 도덕적·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로 행실을 넘어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며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이고 그 사람들은 대표적으로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존중, 성 인식, 인권의식의 일천함을 드러낸 것으로 다시는 있어선 안 된다고 경각심이 생길 만큼 처벌이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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