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음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이 사건은 아직 수사중이다. ⓒ뉴시스·여성신문
공연음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이 사건은 아직 수사중이다. ⓒ뉴시스·여성신문

근래 성희롱이나 성추행, 성폭력, 성매매, 음란행위를 한 고위직 남성이나 연예인들이 고소나 기소를 당하고 재판을 받는 사건들이 늘어나면서 성적인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에 대한 법의 규제와 판결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법과 판례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시대와 사람이 만든 것이라 사회적 통념을 포함한 시대적 상황과 입법과 판결을 하는 사람들(국회의원, 판사 등)이 변화하면 달라지는 속성이 있다. 그런데 성적 자유,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판례의 변화는 괄목할 정도로 크다. 그 결정판은 혼인빙자간음죄에 관한 것이라고 본다.

‘형법’은 1953년 제정될 때부터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형벌을 부과하는 조항(제304조)을 두었다. 이에 따라 혼인할 의사가 없음에도 혼인하자고 속여 성관계를 맺고는 여성의 신의를 저버린 파렴치한들이 고소와 처벌을 당했다. 그런데 이 조항은 혼인빙자간음 행위자를 남성으로, 피해자 또는 보호 대상자를 “음행(성행위)의 상습 없는 부녀”로 제한하고 강간과 달리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이 없이 이루어진 성인 사이의 성관계(간음)를 처벌의 대상으로 하여 평등권과 성적 자유의 침해 여부에 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남성들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도 법원에 잇달아 제기됐는데 법원은 네 번의 판결로 모두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남성들은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헌법재판소(2002.10.31 선고)는 재판관 9명 중 7명이 법원의 기각 결정 이유와 같은 의견을 제시하여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합헌 결정의 요지는 이 조항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정당한 목적이 있고 남성을 자의적으로 차별해 처벌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필요 최소한의 제한으로서 그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7년 후 헌법재판소(2009.11.26 선고)는 다시 제기된 헌법소원에 대해 재판관 6명이 위헌 의견을 제시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이 조항은 폐지됐고, 이 조항에 따라 처벌받았던 사람들은 재심을 청구해 국가에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위헌 의견을 제시한 재판관들은 혼인을 빙자해 성관계를 맺는 행위를 놀랍게도 “해악적 행위를 수반하지 않고 남성이 약간의 과장을 하여 여성을 유혹하는 내밀한 사생활”로 보았다. 그리고 “남성이 혼인을 약속했다고 하여 성관계를 맺은 여성을 국가가 형벌로써 사후적으로 보호한다는 것은 여성은 남성과 달리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기 책임 아래 스스로 행사할 능력이 없는 열등한 존재로 보는 것”이고, 보호 대상을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로 한정한 것은 여성에 대한 고전적 정조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도덕주의적 성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이므로 정당하지 않다”고 했다. 또한 개인의 성행위나 애정행위에 대해 국가가 형벌로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며, “성과 사랑은 법으로 통제할 사항이 아닌 사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커져가고 있는 국민 일반의 법 감정의 변화”를 고려해 볼 때, 이 조항은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절성 및 피해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법익의 균형성도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과잉 제한한 것”이라 판단했다. 반면 3명의 합헌 의견을 제시한 재판관들은 여성을 쾌락의 대상으로 여겨 혼인을 빙자하여 속이고 성관계를 편취하는 행위는 ‘헌법’이 보호하는 사생활의 자유와 성적 자기결정권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권리라는 점과 혼인빙자간음 행위의 피해가 큰 점을 중시한 의견으로 해석된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간통죄에 대해 4차례에 걸쳐 합헌 결정(1990년, 1993년, 2001년, 2008년)을 내렸고 현재 5번째 위헌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재판관들이 과연 간통죄에 대해서도 성적 자유에 대한 국가의 과잉 제한으로 볼 것인지 가족의 행복추구권과 가정의 유지를 위해 배우자의 성적 자유를 적절하게 제한한 것으로 볼지가 매우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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