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인권법, 국회 내 군사 옴부즈맨 제도 설치 이견
국방부는 인권위 역할과 중복된다며 반대

 

30일 훈련에 참가중인 장병의 모습.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뉴시스·여성신문
30일 훈련에 참가중인 장병의 모습.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뉴시스·여성신문

“군대 많이 좋아졌다”는 말. 과거 군 복무 때와 비교하면 지금 군 생활이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과연 그럴까. 군에 자녀를 보냈거나 보낼 예정인 엄마들의 불안감은 높아지고, 군 제대자들은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고개를 젓는다. 지난해 상관의 노골적인 성관계 요구에 번개탄으로 생을 마감한 오모 대위, 지난 4월 구타 등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모 일병, 8월 휴가 중 동반 자살한 관심병사까지 개인의 문제, 일탈로만 치부될 수 없는 수준이다. 잠자고 있던 ‘군인권법’을 정말 깨워야 할 때 인 것이다.

불안한 엄마들… 여성 의원들 분노

지난 19일 국회 국방위원회는 ‘군인권법’ 관련 전체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했다. 국방위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군내 폭력 사태를 질타하며 군내 가혹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데 대해 책임을 물었다. 특히 자녀를 둔 여성 의원들이 분노했다. 새누리당 정미경 의원은 “병사를 관리하는 최초 관리자도 공범이다. 방조가 아니다”라며 "공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사관 출신인 같은 당 손인춘 의원은 군이 사건 발생 후 미봉책으로 내놓는 장병 인권 교육을 문제 삼으며 "지휘관들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군 리더들을 보면 자기 수준에서 사병을 본다. 그렇게 교육하면 백날 해봐야 도움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의원은 군 사법체계의 한계를 꼬집었다. "군 사법체계를 보면 군 검찰 인사행정, 군법관의 심판관 임용 등이 지휘관에 복속돼 있어 초급간부, 피해 병사들이 이런 문제를 보고한다고 해도 사후 독립된 기관에서 재판받고 피해가 보존된다고 인식하기 어렵다"며 "초급간부의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초급간부가 못하는 진정한 이유를 알고, 군 사법문제까지 (문제의식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아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95.7% “성추행, 군대 내에서 보호 못 받아”

군 인권문제 중 성추행·성폭력 실태도 심각한 상태다. 최근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장남은 후임병에 대한 구타뿐만 아니라 성추행 의혹으로 영장이 청구됐다.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이들 대부분은 군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가 군인권센터에 의뢰해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장병 200명, 여군 100명을 대상으로 군 성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여군을 본 적은 28.0%, 여군 스스로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19.0%로 나타났다. 경험하거나 목격한 응답자가 47.0%로 과반에 가깝다. 성적 괴롭힘을 당한 뒤 수치심을 느꼈다는 응답이 20.9%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자살 충동(19.0%), 분노·폭력(15.6%)이 바로 뒤를 이었다. 성적 괴롭힘을 경험한 이들 중 87.2%는 부대 내에서 '전혀 보호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보호받지 못한 편(8.5%)'까지 합하면 95.7%다. 군대가 성폭력을 당한 여군을 보호해 준다고 응답한 이는 한명도 없었다. 자살한 오 대위는 고충상담관이었다. 

남성 장병들은 성적 괴롭힘을 당할 경우 97.4%가 '대응하겠다'고 답했다. 대응 방법은 대부분 '직접 대응하겠다'와 '부대 내 지휘체계를 이용한다' 방식(64.8%)으로 상대적으로 수사기관이나 군 외부에 도움을 청하겠다는 응답이 적었다. 성적 괴롭힘을 당해도 대응하지 않겠다고 대답한 이들은 그 이유에 대해 27.1%가 '나쁜 평판이 생길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답했으며, 그 다음으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렵기 때문(24.7%)', '가해자와의 관계 때문(17.6%)', '군 조직 자체를 불신하기 때문(14.1%)' 등으로 답했다. 부대 내 문제는 부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윤일병 사망사건과 28사단 소속 관심사병 2명이 휴가를 나와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지난 8월 12일 경기도 연천 28사단에서 장병들이 인권교육을 받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윤일병 사망사건과 28사단 소속 관심사병 2명이 휴가를 나와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지난 8월 12일 경기도 연천 28사단에서 장병들이 인권교육을 받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여야, 감독기관 설치 이견으로 군인권법 표류

현재 국회가 논의 중인 군인권법은 크게 두 가지다. 새정치 안규백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군인지위향상에 관한 기본법'과 새누리 한기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인복무기본법'이다. 안 의원의 법안 핵심은 '군 옴부즈만 제도(국방 감독관)'를 설치하는 것이다. 외부 감독이 수시로 가능한 제도로 부대 방문권과 정보 접근권,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한 시정·개선 권고권을 부여한다. 한 의원의 군인복무기본법은 병사들 간의 명령을 금지하고, 군대 내 전문상담관을 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두 법 모두 지난 2012년 6월과 8월 발의됐음에도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뒤 기간 만료로 자동 폐기됐었다. 사건 발생 후 문제 인식은 넘쳐나나 실효성 있는 방안은 해를 거듭하고 있는 셈이다.

군인권법 핵심인 군사 옴부즈만(국방 감독관) 제도 논의는 계속 겉돌고 있다. 군 전문가들이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국방부가 국회 내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기존 국민권익위원회 담당 분과가 있는 만큼 제도 신설엔 부정적이다. 그러나 지난해 열린 공청회에 참여한 군 전문가들은 모두 이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공청회에서 최강욱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와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모두 독일식 옴부즈만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군인은 군인이기에 앞서 민주적 시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독일의 옴부즈만 제도를 하나의 롤모델로 제시했다. 독일이 1960년 군 개혁제도로 내놓은 이 제도는 군인도 민주적 시민권을 가진 시민이란 개념이 바탕이다. 기본법 제45b조에 근거, 의회 소속 옴브즈맨이 군 실태파악을 위해 정보 요구, 문서 접근, 군부대 일반 사병 면담권 등을 갖고있다. 무엇보다 사전 예고 없이 군부대를 방문할 수 있는 권한, 직권조사권도 있어 입수 정보만으로 조사 활동을 펼칠 수 있다. 

국방부 ‘혁신방안’엔 옴부즈만 제도 쏙 빠져

군 자체의 개선 의지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지난 13일 국방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병영문화 혁신방안'에도 옴부즈만 제도는 빠져있다. 이미 군은 2000년 '신병영문화 창달 추진계획', 2003년 '병영생활 행동강령', 2005년 '선진병영문화 비전', 2011년 '병영문화 개선운동' 등을 혁신안으로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군인권센터 조사에서 '군내 성교육, 인권교육'에 대한 여군들의 만족도를 살펴보면 '불만족(47.6%)'과 '매우 불만족(47.6%)'이 대다수였다. 비슷한 내용에 매번 나오는 교육 강화 등 짜깁기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은 20일 병영 내 인권 침해 사례가 거듭되는 데 대해 '부대 해체'를 거론했다. 군 개혁 때마다 분단 상황과 작전 논리를 내세우며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만 일관하던 군대가 내놓은 특단의 대책은 ‘해체론’이었다. 국회 예비역 장성 출신 의원들도 군의 떨어진 사기만을 걱정하며 군가산점제를 슬며시 거론했다. 살아있는 군인들의 사기를 위해 가산점이라도 주자는 논리다. 50년 동안 외부 통제를 거의 받지 않은 군대의 수장들 인식은 군 작전과 조직 행정의 문제를 구분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위는 군인권법 논의를 다음 정기국회로 넘겼다. 과연 군을 ‘제복 입은 시민’으로 봐야한다는 목소리가 군 내부까지 전달될 수 있을지, 선택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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