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으로 집 떠난 여성들 고향 그리워할 수 없어
고향 담론은 남성들이 장악

 

고향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싣는 서울역 귀성객들의 모습. 여자가 고향을 떠나는 가장 흔한 기회는 결혼이었고, 고향을 그리워 한다는 것은 결혼생활이 불행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이기에 여성은 그리움을 가슴 속에 묻고 살았다. 그렇게 여자들에게 고향 노래를 부를 기회는 박탈됐다. ⓒ뉴시스·여성신문
고향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싣는 서울역 귀성객들의 모습. 여자가 고향을 떠나는 가장 흔한 기회는 결혼이었고, 고향을 그리워 한다는 것은 결혼생활이 불행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이기에 여성은 그리움을 가슴 속에 묻고 살았다. 그렇게 여자들에게 고향 노래를 부를 기회는 박탈됐다. ⓒ뉴시스·여성신문

달력을 보니 벌써 추석이 코앞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고향에 대한 대중가요를 집중적으로 듣는 때가 가까워졌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사에서 고향 노래는 사랑 노래 못잖게 흔하다. 그런데 다소 놀라운 대목이 있다. 이런 고향 노래 중 여자들의 노래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 유명한 고복수의 ‘타향살이’나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 같은 일제강점기 노래부터 나훈아의 ‘고향역’ 같은 1970년대 노래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남자들 노래뿐이다. 여자들도 고향은 있고,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을리 없다. 하지만 여자들의 고향 노래는 거의 없다. 아마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그렇게 보자면 남자들의 고향 그리움의 실체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중가요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의 유명한 시인 정지용의 시 ‘고향’(채동선 작곡의 가곡으로 잘 알려진)을 보면, 단순한 향수 이외의 복잡한 심사가 잘 드러난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 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정지용 ‘고향’

이 시의 화자는 고향에 돌아와 있다. 타향에 있을 때는 시 ‘향수’에서처럼 ‘꿈엔들 잊힐리야’라고 절절히 노래했던 고향이건만, 막상 와보니 그 마음이 아니다. 새와 꽃들은 예전과 다를 바 없다. 바뀐 것은 자신의 마음이다. 자신의 마음은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인 것이다. 항구로 가면 배를 타고 멀리 어디론가 가고 싶은 게다. 화려한 ‘서울’이 아니라 ‘항구’라니, 이건 분명 외국으로 가고 싶은 것이고, 지식인들의 일본 유학이 보편적이었던 당시로서는 일본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 

말하자면 20세기 동안 남자들은 고향을 떠나 떠돌았고, 그것도 ‘대처(大處)’로 가고 싶어 했다. 서울이든 일본이든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큰물’에서 놀아야 이들은 성장하고 성공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남자들이 대도시로 ‘유학’을 가고 일자리를 찾아 상경했다. 그것은 분명 고생길이었고 그래서 고통스러울 때마다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한편으로 성장의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자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교육의 기회도 많이 주어지지 않았고, 여자들이 집을 나가면 ‘망가진다’는 생각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남자에게만이 아니라, 다 큰 여자에게도 집은 구속이다. 하지만 그 구속은 너무나 강고해 뚫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여자는 그냥 고향에 머물러 있었고, 그래서 남자들이 그리워하는 고향 풍경에는 늘 여자가 있다. 정지용의 ‘향수’에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등장하고, 나훈아의 ‘고향역’에는 ‘이쁜이 곱분이 모두 나와 반겨’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넘쳐흐른다. 고향에 애인이나 아내가 없으면, 어머니가 그 자리를 대신하며 ‘그리운 고향’ 풍경을 완성한다. 

여자가 고향을 떠나는 가장 흔한 기회는 결혼이었다. 그러니 고향 노래는 더욱 나올 수가 없다. 결혼한 여자가 고향을 그리워한다? 이건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일이다. 결혼생활이 편하기야 했으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아가고 싶다’ ‘그립다’라고 말해선 안 됐다. 그리워해봤자 돌아갈 수도 없었으니까, 그 그리움을 가슴속 깊이 묻어두고 살았다. 이렇게 여자들에게 고향 노래를 부를 기회가 박탈됐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들은 꼭 자신의 고향에 여자를 데리고 가고 싶어 한다. 

일사후퇴 때 피란 내려와 살다 정든 곳 두메나 산골/ 태어난 곳은 아니었지만 나를 키워준 고향 충청도/ 내 아내와 내 아들과 셋에서 함께 가고 싶은 곳/ 논과 밭 사이 작은 초가집 내 고향은 충청도라오

조영남 ‘내 고향 충청도’(조영남 작사·외국 곡, 1970년대 초)

참 오랜만에 돌아온 내 고향/ 집 뜰엔 변함없이 많은 꽃들/ 기와지붕 위 더 자란 미루나무/ 그 가지 한 구석엔 까치집 여전하네/ 참 오랜만이야/ (중략) / 옹기종기 모여앉아 송편 빚는 며느리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시간은 흘러가는데/ 적적하던 내 고향집 오늘은 북적대지만/ 우리 모두 다 떠나면 얼마나 외로우실까/ (하략)

안치환 ‘고향집에서’(안치환 작사·작곡, 1995)

이렇게 남자들은 고향 담론을 자신의 것으로 장악해버렸다. 여자들은 이렇게 고향 노래를 잃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