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현실에 직면한 20대 여성의 홀로서기

 

영화 프란시스 하는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 없는 27살 뉴요커프란시스가 꿈과 현실, 우정과 사랑 사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밝고 유쾌하고 사랑스럽게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 '프란시스 하'는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 없는 27살 뉴요커프란시스가 꿈과 현실, 우정과 사랑 사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밝고 유쾌하고 사랑스럽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녀는 말끝마다 룸 메이트인 소피에게 ‘사랑해’를 연발한다. 친구 손을 붙잡고 뉴욕 길거리를 뛰어다니거나 웃긴 포즈로 지하철에서 사진 찍기를 즐기는 여자. 백팩을 짊어지고 점퍼를 입고 뉴욕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 프란시스. 그녀는 시트콤 ‘프렌즈’에 나오는 뉴요커라 불리는 전문직 여성들의 화려한 하이힐이나 핸드백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왜냐하면 프란시스는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세금 정산으로 뜻밖의 돈이 생기자 친구에게 밥 사준다고 했다가 현금 지급기에서 돈을 뽑으러 뉴욕 동네방네를 뛰어다닌다. 때로는 춤을 추며 뉴욕의 횡단보도를 건넌다.

‘러닝 걸’ 프란시스에게는 소피라는 둘도 없는 친구가 있다. 영화 ‘프란시스 하’에서 그려내는 프란시스와 소피의 관계는 영화 속 대사처럼 ‘섹스하지 않는 레즈비언’ 커플 같다. 소피와 프란시스는 극과 극의 성격을 지녔다. 정갈하고 치우기 좋아하는 소피는 한사코 프란시스에게 침대에선 양말을 벗어줄 것을 원한다. 그러나 프란시스는 3일 동안 설거지도 하지 않은 채 이곳저곳에 옷을 널어놓는다. ‘프란시스 하’의 첫 장면에서 작은 고양이 두 마리처럼 치고받고 장난을 치는 두 사람의 사이는 세상 누구도 갈라놓기 힘들어 보인다. 프란시스는 소피 때문에 같이 살자는 남자의 프러포즈도 거절한다.

두 사람은 대학 졸업 후 원대한 꿈을 품고 뉴욕에서 생활하고 있다. 랜덤하우스에 근무하는 소피는 출판계의 거물이 되길 원하고, 프란시스는 현대무용가가 꿈이다.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 소곤소곤 거리는 두 사람. 아이는 낳지 않고 명예 학위에 대학 졸업식에서 근사한 연설을 하는 것을 꿈꾼다. 그러나 영화 속 뉴욕은 무채색 도시다. 색감이 모두 제거된 그곳은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다. 감독 노아 바움 백은 맨해튼의 명소나 뉴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대신 프란시스가 기거하는 작은 방들과 건물들, 지하철 같은 생활 공간에 머무른다. 심지어 센트럴공원에서 프란시스는 담배를 피우다 경찰관에게 혼도 난다.

 

미국 뉴욕 브룩클린에서 절친 소피와 함께 사는 프란시스. 두 사람은 각자 출판계와 현대무용에서 최고가 될 미래를 꿈꾼다.
미국 뉴욕 브룩클린에서 절친 소피와 함께 사는 프란시스. 두 사람은 각자 출판계와 현대무용에서 최고가 될 미래를 꿈꾼다.

프란시스의 삶은 대도시에서 힘겨운 생을 버티며 꿈의 한 조각을 따라다니는 다른 도시의 20대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프란시스는 “뉴욕에서 예술을 한다는 건 돈 있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일이야”라고 시무룩하게 말한다. 그러나 아이들 무용 가르치고, 월세 내고, 밥 사 먹어야 하는 프란시스에게 소피는 회사도 그만둔 후 남자 친구 패치에게 미래를 맡겨버리고 도쿄로 가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프란시스는 크리스마스 시즌 투어에서 해고돼 무용수로의 싹도 잘려버린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진 않거든요.” “저는 댄서인 것 같아요.” 자기 자신조차도 딱히 누구라고 내세우기 힘은 프란시스의 이 대사는 사실 힘겨운 20대를 거쳐 홀로서기를 모색하는 모든 여성들의 마음과 딱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파티에서 주책맞게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거나, 현실은 아랑곳없이 즉흥적으로 파리에 날아가거나, 프루스트를 불어 책으로 읽겠다고 호언장담하는 프란시스를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영화의 백미는 웨이트리스를 거쳐 어느 날 파티에서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소피와 프란시스의 재회 장면. 술에 취해 약혼자 패치와 싸우다 좁은 기숙사 한 귀퉁이에 어느 날 갑자기 소피가 찾아온다. 둘은 좁은 기숙사의 싱글 침대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의 꿈을 나누며 킬킬대던 앞의 장면과 수미 상관을 이루는 이 장면에서 소피는 깊숙한 속내를 프란시스에게 내비친다. 도쿄에서 임신을 했다 유산했고, 블로그의 겉모습과 달리 우울증을 경험했다는 것. 이 장면의 부감은 노아 바움백이 왜 이 영화를 흑백으로 찍을 수밖에 없는지 단번에 알게 해 준다. 깊은 어둠이 내려앉고 마음속 그림자를 토로하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여자들의 내면이 흑백 화면에 고요히 얹혀 있다.

이제 프란시스는 자신을 언데이터블(undatable), 즉 연애 불가능이라 진단했던 친구에게 ‘사실은 내가 연애 불가능이었다’는 고백을 듣는다. 무용단 사무직을 받아들이고 현실과 타협할 줄도 안다. 겉으로는 명랑 발랄 그 자체로 태양 같은 웃음을 내 보이지만 모든 성장통을 그 미소 속에 감추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에게 싱글 침대의 바깥쪽을 내어줄 수 있는 여자. 우리 세대의 모든 프란시스 하를 응원한다. 우편함에 자기 이름자가 다 안 들어가도 그냥 종이를 쓱 접어 성을 ‘하’로 만드는, 마침내 자기만의 공간을 구한 사랑스런 그녀에게 마음속 깊은 박수를 보낸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