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석 국경선평화학교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지석 국경선평화학교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광복절은 나에게 어떤 날인가, 무슨 의미가 있는 날인가. 7월 27일, 남북한이 정전협정을 체결하고 총성이 그친 날 나는 호주에서 온 평화학자 일행과 함께 소이산에 올랐다. 백마고지가 바로 눈앞에 있고 남한 민통선 안 철원 들판과 북녘 평강 고원의 넓게 펼쳐진 사이에 진녹색 숲의 비무장지대가 길게 가로놓여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더니 정말 우리 산하는 아름답다. 6월 25일 한국전쟁, 7월 27일 정전협정, 그리고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우리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은 주로 무더운 여름 달에 일렬로 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우연처럼 이 세 날은 서로 인과관계가 있다. 8월 15일 맞이한 광복절은 남북한 분단의 날이 됐다. 그리고 결국 6월 25일 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쟁은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중단됐고, 그 후 60여 년의 세월은 7월 27일의 지루한 연장이다. 매년 우리는 7월 27일을 맞이하고, 또 8월 15일을 기념한다. 나에게 8·15 광복절은 무슨 의미를 가진 날인가.

‘준비하라, 곧 온다.’ 나에게 8·15 광복절은 준비를 깨우친다. 우리 선조들은 준비하지 못한 채 갑자기 도둑처럼 온 해방을 맞았다. 아주 안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해방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일치단결하여 그 날을 준비했더라면 강대국일지라도 감히 한반도를 함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연코 올 날을 준비하고 맞이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분단과 전쟁, 그리고 휴전-분단의 비극을 겪어야만 했다.

나는 최근 독일의 통일 대통령 바이츠제커의 회고록 ‘우리는 이렇게 통일했다’를 읽고 있다. 독일의 전쟁과 분단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는 독일이 마침내 통일을 이뤄온 역사를 담담하고 통찰력 있게 독일 분단 극복의 통일 역사를 개인의 경험으로 증언한다. 그의 증언 가운데 내 가슴속에 가장 감명 깊게 남은 이야기는 독일 사람들의 통일을 향한 믿음에 관한 것이다. “유럽과 독일이 분단돼 있는 동안 동독과 서독의 국민이 경험한 ‘우리는 하나’라는 깊은 연대감은 국제적 상황이 ‘통일에 대한’ 가망이 없어 보이는 시기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이 확신은 누구도 억압할 수 없었다.” 전 독일인들이 가슴에 품었던 ‘누구도 억압할 수 없는’ 통일의 믿음, 이것이 마침내 동·서독의 분단 40년 역사를 마감지었다. 독일의 통일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의 이야기, 남북한 평화통일의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도 믿음을 잃지 않는 한 남북한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다.

요즘 다시 우리 사회에 통일 이야기가 화제가 되는 것 같은데 그냥 말만 무성하고 실천은 없다. 보통 사람들은 강 건너 불 구경하는 모습이다. 이래서는 평화통일은 요원하다. 지도자의 말이 진실성을 잃게 되면, 남북한 분단을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현실주의가 사람들의 머릿속을 채워간다. 믿음도 사라진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는 달랐다. 바이츠제커를 비롯한 독일의 지식인들, 정치인들은 정파를 뛰어넘어 동·서독은 한 공동체라는 의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다. 통일을 향한 마음에서는 지식인, 정치인들이 분열하지 않았다는 바이츠제커의 증언은 이제 우리의 증언이 돼야 한다.

오늘 우리는 7·27의 지루한 분단 역사를 마감하는 시간의 은총을 다시 8·15 광복절에 경험할 수는 없을까? 그것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남북한 평화통일의 날이 필연코 올 것이라는 믿음이 내 가슴속에 꿈틀대고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한국의 평화사상가 함석헌은 우리의 믿음은 선언에서 생긴다고 했다. 남북한 평화통일을 선언하자. 이 믿음으로 분단의 60년 7·27 역사를 마감하고 8·15 평화의 새 역사를 시작하자. 광복절에는 남북 평화통일을 선언하자. 내 가슴속에 선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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