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지고 걸으며 아이들 고통에 다가가고 싶어”
“십자가 지고 걸으며 아이들 고통에 다가가고 싶어”
  • 김수희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4.07.16 14:28
  • 수정 2018-01-10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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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순례 중인 희생자 가족들
도보로 단원고에서 팽목항 거쳐 교황 방문하는 대전까지

 

단원고 2학년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가 십자가를 메고 순례길의 선두에 서서 걷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단원고 2학년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가 십자가를 메고 순례길의 선두에 서서 걷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새벽 4시. 7월의 한중간이라 어느 때보다 일찍 날이 밝을 때지만 아직 여명조차 없는 이른 새벽이다. 밤새 뒤척이다 결국 잠들기에 실패하고 일어나 성당 마당으로 나갔다. 벌써 몇몇 분들이 출발 채비를 하고 있다. 어젯밤 잠시 인사를 나눴던 승현이 아버지도 벌써 나와 계셨다. ‘잘 잤느냐’며 기자를 챙기는데 그렇게 묻는 당신은 정작 못 잔 것 같은 얼굴이다. 검게 그을려 수척해진 얼굴에 듬성듬성 턱을 덮고 있는 회색 수염이 피곤해 보였다. 3시 좀 넘어 깨서 나와 있다고 했다. 전날 30㎞를 걸은 육신에게 잠시 회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아버지’는 다시 길 위에 섰다.

7월 14일 세월호 유가족 ‘십자가 도보 순례단’의 순례 7일째. 연일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5㎏의 나무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깃발을 들고 하루 평균 20~25㎞를 걷는 강행군이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56)씨와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52)씨, 승현군의 누나 이아름(25)씨는 지난 8일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진도 팽목항을 거쳐 다시 대전까지 장장 약 800㎞에 이르는 도보 순례길에 올랐다. 아직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의 귀환과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바라며 나선 길이다.

전날 숙소였던 세종시 전의면 읍내리 전의성당에서 승합차로 10여 분을 달려 전날 걷기를 마무리한 충남 공주시 정안천변 23번 국도에 내렸다. 신부님의 기도로 유가족 3명과 당일 순례단에 합류한 천주교 수사들과 성도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순례단 소식을 접하고 찾아온 시민들까지 15명 정도가 7일째 여정을 시작했다.

 

7월 14일 순례 7일째 순례단은 충남 공주시 정안천변을 지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7월 14일 순례 7일째 순례단은 충남 공주시 정안천변을 지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아버지 두 분이 맨 앞에 섰다. 목에는 승현이와 웅기의 사진을 걸고 어깨에는 십자가를 졌다. 두 아버지가 번갈아 메고 가는 130㎝길이의 나무 십자가에는 고통스런 표정의 예수의 형상과 단원고 아이들의 메시지가 적힌 노란 리본 수십 개가 묶여 있었다. “깃발은 동행하는 이들에게 맡겨도 이 십자가만은 아무에게도 못 맡긴다”며 맨몸으로 걷기에도 버거운 길을 두 아버지는 묵묵히 십자가를 메고 걸었다. “승현이와 웅기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싶다”는 아버지들에게 십자가는 천근의 무게지만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이고 소망이었다. 이들은 8월 15일 대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해 이 십자가를 교황에게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아침도 거르고 3시간쯤 걷자 아침 안개가 걷히면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됐다. 뒤따라오는 기자에게 간간이 농담을 건네던 아버지들의 걸음도 느려졌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은 그나마 나았지만 국도를 따라 걸을 때는 아스팔트의 열기와 자동차 소음, 먼지가 순례단을 괴롭혔다. 경찰차가 따라오고 있었지만 차들이 속도를 내는 국도변을 걷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면 이 지역 성당 성도들이 시원한 배즙과 간식거리를 싸들고 찾아왔다. 직접 재배한 방울토마토를 가져오거나 순례단이 지나는 길에 차를 세워두고 기다렸다가 생수를 건네주며 응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순례단이 공주시외버스터미널 앞 금강 둔치공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순례단이 공주시외버스터미널 앞 금강 둔치공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서 작열할 즈음 공주시외버스터미널 앞 금강 둔치공원에서 오전 일정을 마쳤다. 성당을 출발한 지 약 6시간, 14㎞를 걸었다. 전날 밤을 새우긴 했지만 처음 순례길에 나선 기자는 벌써 기진맥진했다. 일주일째 이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아버지들의 건강이 걱정스러웠다. 승현 아버지의 발은 물집으로 부르터 걷기가 힘들고, 웅기 아버지는 햇볕 알레르기로 온 팔에 빨간 두드러기가 돋았다. 1년 중 가장 덥다는 삼복을 앞두고 남은 33일의 여정이 아득하기만 했다.

이른 점심은 근처에서 지역 성당 성도가 운영하는 ‘고은 어버이집’에서 준비했다. 오후 일정을 시작할 때까지 쉴 수 있는 공간도 제공했다. 오후 4시 금강 둔치공원에는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순례단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오늘 하루 휴가를 내고 대전에서 온 가족은 “할 수 있는 게 없어 잠시 함께 걷기라도 하려고 왔다”고 했고, 청주에서 자전거를 타고 온 남성은 SNS에서 오늘 순례길을 미리 둘러보고 와서 길 안내를 돕기도 했다.

 

단원고 2학년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쉬는 시간 발에 물을 부으며 열기를 식히고 있다. 이씨의 발은 물집으로 부르터 있었다.
단원고 2학년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쉬는 시간 발에 물을 부으며 열기를 식히고 있다. 이씨의 발은 물집으로 부르터 있었다.

많은 이들이 함께해 힘을 보탰지만 지열이 이글대는 오후 순례길은 오전보다 한층 힘들었다. 공주대교를 건너 다시 국도에 들어섰다. 허리 아래가 내 몸 같지 않다는 생각으로 몽롱해질 즈음 7㎞가량의 오후 순례가 마무리됐다. 십자가를 메고 온 웅기 아버지는 여전히 선두를 지키고 있었으나, 발의 통증이 심해진 승현이 아버지는 뒤처져 힘겹게 일행과 동행했다.

급하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 오는 길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곧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는 10명에 이르고, 국회에서의 세월호 관련 조사는 유가족들의 마음에 더욱 생채기만 내고 있을 뿐이다. 내일도 아버지들은 길 위에 설 것이다. 아무도 지지 않으려는 십자가를 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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