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십자가 순례하는 희생자 아버지들

교황 만나면 세월호 희생자들 위해 기도 부탁할 것
“세월호 참사 해결위해서는 유족 입장에서 접근해야”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제일 알고 싶었던 게 아이의 고통이에요. 그걸 느껴보고 싶어요. 그런 걸 남한테 맡기면 의미가 없죠. 십자가는 누구한테도 맡길 수 없다고 처음부터 승현이 아버님이랑 상의했어요. 그래야 우리가 조금이나마 승현이와 웅기의 고통을 알고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김학일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홀로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예수의 뒷모습이 이랬을까. 나무 십자가를 흰색 천에 묶어 어깨에 멘 아버지들의 뒷모습이 한없이 슬프다. 스스로를 고행길에 세워 억울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던 자식들이 마지막 순간에 겪었을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다는 이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십자가를 내려놓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56)씨와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52)씨의 40일간 800㎞의 십자가 순례가 7일째를 맞고 있었다.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십자가는 원래 원망하고 증오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고통과 아픔을 내가 진다는 속뜻이 있거든요.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가자 생각했어요. 십자가 졌다고 해서 용서하고 화해하고 아직 그런 생각까지는 안 들어요. 제가 좀 더 큰 깨달음을 얻으면 그렇게 될지 모르겠어요. 증오심이나 적개심, 분노 같은 걸 계속 가슴에 담아두면 언젠가는 상대방을 공격하게 되니까 가능하면 저도 마음에 있는 그런 걸 내보내고 싶어요.”(이호진씨)

이들의 순례가 끝을 맺을 곳은 8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서다. 이들은 교황을 만나 직접 이 십자가를 건네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과 유족들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800㎞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걸어가면 교황님이 어쩌면 만나주실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정성이 하늘에 닿으면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잖아요. 어쩌면 이번이 그분을 뵐 수 있는 내 생에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몰라요. 교황을 뵙게 되면 왜 아이들이 살지 못했는지 그게 궁금하다고 꼭 물어보고 싶어요. 그러면 교황께서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를 주실 것 같아요.”(이호진씨)

“저는 딱 한 가지밖에 없어요. 우리 아이들 304명의 영혼 항상 기억해 주시고, 미사 하실 때 교황께서 한 말씀만 해주신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아이들과 유족들을 위해 기도해주실 거잖아요. 그럼 하나님께서 그 기도 안 받으시겠어요? 다 받으시고 그 영혼들 틀림없이 다 하나님 옆에 두실 거예요. 그걸 보면 승현이나 웅기가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그럼 승현 아버님과 제 소원이 이뤄진 거죠.”(김학일씨)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

무더운 날씨에 하루 20㎞ 이상씩 걸어야 하는 강행군으로 일주일 만에 아버지들은 많이 수척해 있었다. 각 지역 성당의 도움으로 이제는 숙식과 보조 차량, 길잡이 등이 한결 수월해졌지만 두 아버지와 승현군의 누나 아름씨, 취재를 위해 동행한 기자 등 총 5명이 출발한 첫날은 많이 힘들고 막막했다.

“단원고에서 매송면사무소 가는 첫날이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난생 처음 하는 데다 의욕만 앞섰지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았거든요. 논두렁 지나고 밭두렁 지나는데 날은 어두워지고, 잘 곳은 없고. 외로움을 각오하고 나선 길이었지만 막상 외롭게 되니까 그렇더라고요…. 동기 부여가 특별하지 않았으면 첫날 포기했을 거예요.”(이호진씨)

첫날보다는 많이 나아지고 적응도 됐다지만 이들은 여전히 몸도 마음도 힘들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너무 슬프게 하지 말자”며 일부러 농담도 건네며 걷지만 불쑥불쑥 솟는 슬픔까지야 어찌할까.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괜찮아질지, 당분간은 이 힘든 상태가 지속될 것 같다고 했다. 팽목항이 가까워질수록 두려운 마음도 든다.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금 팽목항에 계신 보호자 분들 심정이 두 달 전 제 심정과 똑같아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갔는데 한 가족도 만나지 못한 상태라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아요. 팽목항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그런 생각이 들면 팽목항 가는 게 두려워요. 그 심정을 알기에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전부 가족을 만났다고 하면 걸음이 참 가벼울 것 같아요. 가족들 만나서 그동안 고생했다, 잘 견디셨다고 할 얘기가 많은데….”(이호진씨)

두 아버지의 순례길은 아버지가 걱정돼 함께 나선 승현군의 누가 아름씨가 SNS를 통해 매일 생중계하고 있다. 매일의 일정과 참여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올리고 있어 온라인상에서도 이들의 순례 소식은 매일 널리 퍼지고 있다. 아버지들은 “세월호를 이해하려고 하는 분들이 이렇게 오고 있다”며 “그 자체로 너무 고맙다”고 감사를 전했다. 아름씨는 “순례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아버지들 건강”이라며 “우리가 팽목항에 도착하기 전에 남은 분들이 다 가족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이야기했다.

“세월호 참사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에서 제일 중요하게 명심해야 될 게 유족의 입장이에요. 유족의 입장이 되지 않으면 국정조사, 특별법, 책임자 처벌이 모두 용두사미에 그쳐버려요. 웅기 아버님과 저의 순례길이 세상의 울림이 돼서 국민들이 세월호를 잊지 않고 좀 더 기억해 주신다면 제대로 해결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이호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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