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우리 가족’ 주인공 김태훈·감독 김도현
2006년부터 새터민 청소년그룹홈 ‘가족’ 운영
사선을 넘어 온 10명의 북한이탈 청소년과 ‘총각 엄마’ 의 좌충우돌 성장기

 

여성신문은 7월 1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디자인 카페 ‘ZEN’에서 영화 ‘우리가족’ 김도현 감독(왼쪽)과 주인공 김태훈 삼촌을 만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신문은 7월 1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디자인 카페 ‘ZEN’에서 영화 ‘우리가족’ 김도현 감독(왼쪽)과 주인공 김태훈 삼촌을 만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북한 출신 사람들은 당연히 ‘그럴 것이다’라는 잘못된 생각이 있잖아요. 이 영화가 인식 개선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서울 성북구 정릉 4동에 위치한 새터민청소년 그룹홈 ‘가족’에는 북한이탈청소년들과 ‘총각 엄마’ 김태훈(39)씨가 살고 있다. 김씨는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보다 ‘뭐가 제일 힘들어요?’라고 묻는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볼 때 가장 어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영화 ‘우리가족’은 김씨와 북한이탈청소년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후배를 통해 김씨의 존재를 알게 된 김도현(42) 감독은 김씨를 찾아갔고, 2012년 6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년 4개월 동안 동고동락하며 ‘가족’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는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여성신문은 7월 1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디자인 카페 ‘ZEN’에서 영화 ‘우리가족’ 김도현 감독(오른쪽)과 주인공 김태훈 삼촌을 만났다. 영화는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신문은 7월 1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디자인 카페 ‘ZEN’에서 영화 ‘우리가족’ 김도현 감독(오른쪽)과 주인공 김태훈 삼촌을 만났다. 영화는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룹홈은 가정해체 등의 이유로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양육하는 가정과 같은 주거 형태의 소규모 보호시설이다. 새터민청소년 그룹홈은 전국 13개뿐. 종교단체를 제외한 개인이 운영하는 곳은 김씨의 ‘가족’이 유일하다. 30대 초반 유아교육 전문 출판사에 근무하던 그는 2004년부터 시작한 하나원(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 자원봉사 활동을 계기로 아이들의 아빠가 됐다. 발단은 염하룡(19)군 과의 만남이었다. “하룡이 어머니가 하나원 퇴소를 앞두고 놀러오라며 집 주소를 알려주셨어요. 집에 갔는데 어머니는 일자리를 구하러 지방에 내려가고,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TV를 보다 잠들어 있는 꼬마가 있는 거에요. 차마 두고 갈 수 없어 함께 자고 다음날 아침 나가려는데 ‘형 이제 집에 갈거에요?’라는 아이의 물음에 말을 못하고 그때부터 바로 같이 살게 됐죠.” 

김씨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니던 회사를 나와 그룹홈을 만들었다. 하룡이를 시작으로 ‘가족’의 구성원은 한명, 두명 늘어갔다. 보양식에 관심이 많고 농대 진학을 희망하는 진철(20)이부터 귀염둥이 막내 철광(이까지. 영화 작업을 마친 후 1년 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가족 구성원은 조금 바뀌었지만 활기 넘치는 이들의 공간은 변함이 없다. 남자들만 모여 사는 집안에는 으레 싸움이 잦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고. 16개월간 이들을 곁에서 지켜본 김 감독은 “갈등이 생겨도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 같다. 힘들게 넘어온 만큼 어렵게 찾은 행복을 잘 가꿔가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여성신문은 7월 1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디자인 카페 ‘ZEN’에서 영화 ‘우리가족’ 김도현 감독(왼쪽)과 주인공 김태훈 삼촌을 만났다.
여성신문은 7월 1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디자인 카페 ‘ZEN’에서 영화 ‘우리가족’ 김도현 감독(왼쪽)과 주인공 김태훈 삼촌을 만났다.

2년간 연락을 끊고 지내던 어머니와의 사이도 회복됐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 집을 왕래한다. 지역 사회에서도 신뢰를 얻어 잘 정착했다. 수익구조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지만 그룹홈은 안정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운영 초창기 김씨는 말 못할 고생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청소년들과 총각이 모여사는 것을 안 좋게 보는 이웃들의 시선이 있었어요. 한 번은 잘못된 소문을 들은 경찰이 집에 찾아와 조사를 한 적도 있어요. 앵벌이를 하는 줄 알았던거죠. 또 한 번은 아이 통장을 만들어주러 은행에 갔는데 은행원이 ‘당신 누구냐며’ 절 잡상인 취급하고 쫓아내려 한 적도 있어요. 난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사는 건데 많이 속상하고 화도 났었죠.”

 

김도현 감독.
김도현 감독.
 김 감독은 “나라면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영화 작업 중 결코 잊히지 않는 순간을 떠올렸다. “집을 이사했을 때 방 배정을 하는데 자기 것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이라 방에 욕심을 내는거에요. 그 때 김 선생님이 ‘난 너네들이랑 살면서 방이란 걸 가져본 적 없어’라고 말하는데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어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김씨는 아이들과 함께 매년 번갈아가며 전시회와 음악회를 연다. 가족이 함께 머리를 맞대며 콘셉트를 짜고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은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지난해엔 그룹홈 ‘가족’의 이야기를 소재로 ‘우리도 가족일까요?’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무대에 올렸다. 올해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유화전을 준비 중이다. 아이들이 직접 쓴 글은 책으로도 나와 전시회 첫날 소개할 계획이다.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김씨는 1인출판사를 차렸다.

스스로를 유난떠는 학부모라 칭한 김씨는 학교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전교 학부모 회장과 학교 운영위원을 맡아 지난해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 힘입어 아이들은 일반 학교에 잘 적응했다. 지난해 중학교 전교 회장에 뽑힌 한진범(17) 군의 뒤에도 언제나 그가 있었다. “일반학교에 새터민 청소년이 10명이 들어가면 1~2명만 졸업해요. 나머지는 중퇴나 검정고시,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에 가죠. 전원이 일반학교에 다니고 상급학교에 진학해 졸업하는 것은 우리밖에 없어요.”   

 

김태훈 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태훈 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씨는 최근 사회적 기업 설립 준비로도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강원도 철원을 거점으로 북한이탈주민의 자립을 돕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내용의 사업을 준비 중이다. 5년을 준비 기간으로 잡고 차근차근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사업에서 나온 수익의 3분의 1은 그룹홈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운영을 도모할 계획이다.    

이런 김씨를 보며 자극을 받은걸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김 감독은 최근 복지관에 나가 장애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내 안의 작은 변화가 생겼다”며 “갖고 있는 능력으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10년 또는 20년 후 그룹홈 아이들이 성장해 가정을 꾸리게 되면 다시 그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계획도 있다. “아이들이 30~40대가 되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머릿속으로 생각하면 흐뭇해요.”  

영화 ‘우리가족’은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이들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든든한 울타리죠. 내가 무엇을 하든 숨기지 않아도 되는.(김태훈) 잘 모르겠지만 ‘같이 있는 존재’ 같아요. 곁에 있을 때 소중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세월호 사건을 통해 깨달았어요.(김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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