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의원실 제공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의원실 제공

대학 선배였던 ‘오래된 남자친구’와 만난 것이 대학 새내기 시절이니, 벌써 올해로 30년이나 됐다. 시골에서 갓 올라온 철없던 때부터, 쉽지 않았던 고시생 시절, 호주제 폐지 등에 앞장섰던 열혈 변호사 생활,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까지 이 사람은 늘 내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결혼식도 올리고 함께 살고 있지만 우리는 법적인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호주제 폐지가 되면 혼인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호주제 폐지는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고 이제 와서 우리를 ‘부부’라고 신고한다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관계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때때로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장 두려운 상상은 둘 중 누군가가 크게 다치거나 아픈 상황이다. 만약 둘 중에 한 명이 혼수상태여서 급하게 수술 동의를 해야 할 때, 나머지 한 명이 수술에 동의할 법적 자격이 있을까? 아직은 우리 둘 다 건강하고 평안한 노후가 되길 바라지만, 우리가 더욱 나이가 들면 어떻게든 부딪힐 문제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행 제도에서는 혼인신고하지 않은 생활동반자에게는 이런 자격과 권리가 부여되지 않는다.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살아가는 모든 관계가 혼인·혈연 관계로 포괄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혜택과 권리들은 혼인·혈연 관계에만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홀로 되신 여성 노인을 부양하는 먼 친척 조카,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성인 지적장애인을 돌보는 분, 이혼 후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상속 등 복잡한 문제 때문에 재혼 신고를 못한 커플,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지만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못하는 동성 부부. 현행법은 이들의 사랑과 신뢰에 대해 적절한 법적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이하 생활동반자법)’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권리’를 부여하는 법률이다. 삶을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갈 것인가, 즉 특별한 한 사람, 생활동반자를 가질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 이는 두 사람이 삶을 공유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고 지원해주는 일련의 제도에 접근할 권리를 의미하며, 이는 더 이상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권리의 문제다. 국민건강보험·국민연금·보험수혜 등의 권리, 임대주택에 입주할 권리, 위급 시 의료적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 가정폭력으로부터 공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 정책적 대상으로 고려되고 연구될 권리 등 무수한 제도들이 이 권리에 수반돼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가족을 해체하거나, 혼인을 대체하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혼인, 혈연 외 관계에 법적인 보호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이 더욱 함께 살아가도록 장려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안정을 이루도록 하는 법률이다. 친족 중심의 가족제도로 포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의 지체는 정상가족 밖의 사람들을 사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으며, 더욱 고독하게 만들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볼 수 있도록, 믿고 의지하는 사람과 생을 나눌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고독과 우울의 증가를 막고 사회복지비용을 줄이면서 사회적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노력이 바로 생활동반자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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