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시간제는 질 좋은 일자리 가능성 높아”
‘시간제=여성 일자리’ 인식은 풀어야 할 과제

 

스위스의 수도 베른 시내 한 가운데를 유유히 흐르고 있는 아르강의 모습. ⓒ여성신문
스위스의 수도 베른 시내 한 가운데를 유유히 흐르고 있는 아르강의 모습. ⓒ여성신문

작지만 강한 나라 ‘강소국’ 스위스 인구는 800만 명에 불과하다. 적은 인구에 국가 면적도 4만1277㎢로 우리나라 크기의 41% 수준이다. 반도 안 되는 셈이다. 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 스위스 전체 고용률은 79.4%로 80%에 육박한다. 여성 고용률도 일찌감치 70%를 넘긴 73.6%이다. OECD 평균 여성 고용률은 57.2%이다. 작은 국가 특성상 자원인 노동력을 잘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스위스가 유럽 내 ‘히든챔피언’이라 불리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스위스 정부는 노동정책에 있어 적극적으로 양성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1982년 연방 헌법에 양성평등을 원칙으로 정하고 1988년 양성평등처(The Federal Office for Gender Equality)를 신설한 후 1996년 양성평등과 관련 연방이 고용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연방은 주기마다 양성평등 모니터링 조사를 실시해 각종 관련 수치를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 국가 양성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성격차지수(GGI)에서 136개국 중 스위스는 9위로 줄곧 10위권 내다. 한국은 111위였다.

연방공무원 시간제일자리 비율 23.4%

스위스 연방 공무원 중 시간제 일자리를 사용하는 비율은 전체의 23.4%이다. 공공기관이 앞장서 시간제 일자리를 장려하고 있다. 연방 여성 공무원의 49.2%가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남성은 10.6%에 불과하다. 스위스에서 시간제 일자리 근무자는 전체의 26.0%로 OECD 국가 중 네덜란드(37.8%)에 이어 2위다. 여성들의 시간제 일자리가 전체 고용률 상승을 견인했다고 볼 수 있다.

시간제 일자리에 있어선 시간을 명시하기보다 백분율(%)로 표기한다. 일반적으로 90% 이상은 전일제, 90% 미만은 시간제로 분류한다. 기준이 되는 주당 근무시간은 41.5시간으로 직업군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시간제 일자리 내에선 크게 50% 미만, 50~89%으로 나뉜다. 출산·육아 등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할 경우 대체로 아이가 어릴 때(6세 이하)는 50% 미만으로 일을 하다가 아이가 클수록 50% 이상으로 일을 늘려나가는 경향을 보인다. 기업 내 고위층은 신뢰 기반으로 프로젝트나 사안에 대해 책임을 지는 업무 중심형으로 일하지만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업무 시간을 기록하는 시간 관리제로 일한다. 

 

6월19일 스위스 베른에서 만난 연방경제통상부 다양성부장 앤 프랑소와 베아 보쉬(49)씨가 시간제 일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성신문
6월19일 스위스 베른에서 만난 연방경제통상부 다양성부장 앤 프랑소와 베아 보쉬(49)씨가 시간제 일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성신문

‘시간제=여성 일자리’ 인식은 ‘숙제’ 

스위스는 시간제일자리 관련 숙제를 여전히 풀고 있는 중이다. 연방정부는 전일제에서 시간제로의 전환을 보장하는 법적 테두리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대신 시간제로 일하며 데이케어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세금을 공제하거나 데이케어 비용 자체와 연동시키는 등의 이점을 주고 있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만난 연방경제통상부 인사과 전문위원 앤 프랑소와 베아 보시(49)씨는 “스위스의 시간제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남녀 모두에게 해당되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시간제 일자리는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란 인식이 강하다”며 “연방은 공무원들에게 몇 가지 종류의 시간제 일자리를 제공하고 제안하고 있지만 회사가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하는 건 전적으로 회사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 통계청(2013년 기준) 자료에 나타난 여성 고용 상태는 어린 자녀가 있을수록 적은 시간을 근무했다. 자녀가 0~6세일 때 50% 미만 시간제 비율이 31.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자녀가 15세 이상인 경우 50~89% 시간제 비율이 38.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7~14세 자녀를 둔 경우는 아이가 6세 미만일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한번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한 뒤 전일제로 바꿀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커플의 주당 근무시간은 남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아이가 없을 때는 커플 모두 ‘전일제로 일한다’는 비율이 38.6%로 가장 많았으나, 아이가 생기면서 둘 중 한 명이 일을 안 하는 비율이 큰 폭으로 늘었다. 0~6세 자녀를 뒀을 경우 파트너는 풀타임, 자신은 ‘일을 안 한다’는 응답자가 29.3%로 가장 많았으며, 파트너 풀타임이나 자신은 50% 미만 시간제란 응답은 29.0%으로 그 뒤를 이었다. 가정 일에 쏟는 시간도 6세 이하의 자녀를 둘 경우 여성은 주 55.5시간이었고, 직업 활동은 12.7시간뿐이었다. 반면 같은 조건의 남성은 가정 일에 30.5시간, 직업 활동에 39.5시간을 쏟았다. 남성은 자녀 연령과 상관없이 거의 풀타임으로 일했다. 

 

스위스 전문직 여성단체인 BPW Switzerland가 지난해 개최한 행사에 참석한 여성들의 모습. ⓒ스위스 지역신문 'infoWilplus'
스위스 전문직 여성단체인 BPW Switzerland가 지난해 개최한 행사에 참석한 여성들의 모습. ⓒ스위스 지역신문 'infoWilplus'

“60~70% 시간제는 질 좋은 일자리 가능성 높아”

현재 스위스에서 질 좋은 시간제 일자리라면 적어도 60% 이상 시간제 일자리를 의미한다. 연방공무원 보시씨는 “60~70% 시간제 일자리는 꽤 질 좋은 일자리인 경우가 많다”며 “보통 40~50%만 일하는 시간제 일자리의 경우 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결국 출산·육아 등으로 50% 미만 시간제 일자리를 계속 이어가게 될 경우 커리어 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시간제에서 전환제 전환을 위한 법적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시간제로 일한 이들이 시간을 늘리기 위해선 “차라리 다른 전일제 직업을 새롭게 찾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체 여성 중에선 77.9%(스위스 통계청·2013)가 시간제로 일하지만 매니저급 여성 중에선 10% 정도만이 시간제로 일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성 리더의 비즈니스 전략을 연구한 IMD(국제경영개발대학원) 깅카 토겔 교수는 이와 관련, “시간제를 여성들이 선택할 때 구조적 한계나 재능을 충분히 살릴 수 없는 여건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여성들의 ‘게토(ghetto·격리된 거주지역)’가 될 수 있다”며 “남성의 시간제 비율이 어느 정도 비등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바람직한 부분은 법을 제정해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잘 살펴서 조정해야 한다”며 “이건 꼭 여성만을 위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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