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까지도 유적의 발굴조사에서 여성은 1,2명의 소수가 참여하여 보조역할을 하는 정도였지만, 2010년에 와서는 유적 발굴현장에서 성의 대비가 거의 균등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4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신석기시대 유적 발굴 현장에서 남녀 연구원이 함께 신암리 신석기시대 유적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1980년대 중반까지도 유적의 발굴조사에서 여성은 1,2명의 소수가 참여하여 보조역할을 하는 정도였지만, 2010년에 와서는 유적 발굴현장에서 성의 대비가 거의 균등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4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신석기시대 유적 발굴 현장에서 남녀 연구원이 함께 신암리 신석기시대 유적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뜨거운 햇볕에 검게 그을리고 흙먼지에 피부가 거칠어지는 문화유적 발굴조사 현장에 여성이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국토 개발이 본격화되면서다. 1970년도 중반 이후 팔당댐 수몰지구, 서울 잠실지구의 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 대규모 유적 발굴에 독자적인 여성 발굴단도 참가한 것이다.

1980년도 중반, 전라남도 승주군 주암댐 수몰지구 발굴조사에는 대학교 박물관과 국립광주박물관 등 10개에 이르는 발굴조사단이 함께 참여했는데, 그중 하나가 여성 조사원으로만 구성된 이화여대박물관의 여성 발굴단이었다. 

당시 주암댐 문화유적 발굴조사의 주관을 담당했던 전남대학교박물관은 발굴 현장을 견학 온 여러 사람들에게 이화여대 조사단을 ‘낭자군단’이라고 소개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유적의 발굴조사에서 여성은 한두 명의 소수가 참여하여 보조역할을 하는 정도였고, 햇볕과 거센 바람을 맞으며 야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유적발굴조사는 남성들의 권역이었다. 야전의 격전지와도 같은 거친 일이었기 때문에 그 일을 담당하는 극성스러운 여성들을 군단에 비유해 ‘낭자군단’이라는 별칭을 지어 주었던 것이다.

여성 발굴단이 발굴 현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그 지역의 주민으로 구성된 발굴 인부들이다. 땅을 파내고 흙과 돌을 나르는 일을 담당하는 이들은 대부분 농사일을 하는 연세가 많으신 남성 어르신들이다. 젊은 여성들의 지시를 받아 땅을 파내는 일을 해야 하므로 대부분 멋쩍어 하셨다. 이 때문에 발굴이 원활하게 이뤄질까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은근히 여성들만의 발굴 현장의 진행 상황을 궁금해하고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았다. 결과는 예상외로 단순한 흙을 파내는 작업도 ‘낭자군단’의 현장이 훨씬 진도가 앞섰고, 현장 관리 또한 정결했다. 

이는 힘든 노동의 현장에서 연약한 여성들이 지휘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일반적인 견해가 틀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되기도 한다. 오히려 강한 남성들의 집단에서 부드러운 여성이 리더인 경우, 힘든 일의 진행은 효율이 높다. 이는 남성들이 여성을 도와줘야 한다는 의식과 효과를 내야 한다는 남성의 자존심이 함께 융합된 결과라고 본다. 

2010년에 와서는 유적 발굴 현장에서 성의 대비가 거의 균등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어느 발굴 현장에서나 전사와 같은 여성 발굴조사원이 당당하게 조사단을 이끌고 있다. 여성 조사원들이 독립성을 유지하며 책임을 다하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일도 일반적인 상황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 고고학회에서 한 현장의 최고 전문가로서 오로지 고고학자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분명하게 정립하고 있는 여성 고고학자는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여성성으로 남성들의 도움을 받으며 군림하고자 하는 허약한 여성, 또는 강한 척 위장하지만 비닐 갑옷을 입은 것 같은 여성 리더가 더 눈에 띈다.

이는 여성 스스로 힘든 일을 해결하려는 의지보다 남의 힘이나 남성들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는 나약함이 낳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각성하여 내부에 자리잡은 사물을 소통하고 융합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진정한 여성성을 깨워내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 배려와 소통의 힘이 강한 진정한 여성성만이 풍요로운 여성의 시대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때, 거친 발굴 현장에서 외모보다 전문성을 확립하기 위해 자신을 일깨웠던 ‘낭자군단’을 여러 분야에서 만났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작고하신, 몸을 아끼지 않은 발굴 현장의 젊은 여전사, 한울문화재연구원 장진희 건축고고부장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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