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의 ‘고노담화’ 검증, ‘한·일 정부 간 문안 조정’ 등 정치 타협 강조
아베, 일본군‘위안부’ 동원 강제성엔 모호한 입장… 우경화 가속

 

6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김복동 할머니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고노담화 검증 비판 시위를 하고있다. ⓒ뉴시스·여성신문
6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김복동 할머니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고노담화 검증 비판 시위를 하고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수교 50주년을 앞둔 한·일 관계가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일본 아베 정권이 21년 전 일본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의 본질을 희석시키고 한·일 양국의 ‘정치적 타협물’이라는 식의 검증보고서를 내놨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6월 20일 고노담화에 대해 “한·일 정부 사이의 문안 조정이 있었다”는 내용의 검증보고서를 공개했다.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한·일 정부 간 문구 조정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정치적 산물로 둔갑시켰다.

특히 일본의 고노담화 검증팀에는 일본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해 온 극우 역사학자 하타 이쿠히코를 비롯해 좌장인 다다키 게이이치 전 검찰총장, 언론인, 법대 교수 등 5명이 포함돼 애초 고노담화 검증이 다른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고노담화는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위안부에 대해 사과한 담화다. 공식 외교문서는 아니지만 강제성을 언급하지 않았던 직전 ‘가토담화’에서 한 발 내디딘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본 방위청 등 정부기관의 자료가 바탕이 됐고 한국 정부도 위안부 할머니 16명의 인터뷰를 비공개로 주선하는 등 실질적 조사가 밑바탕이 됐다. 그러나 일본 우익단체들은 줄곧 비공개로 진행된 할머니들의 증언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내 보수우익 세력의 결집 중심에는 고노담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양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위안부 문제의 일본 국내 정치적 의미’ 보고서(2007)에서 고노담화가 1980년대 후반 일본 내 진보 지식인을 중심으로 위안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진행되고 1990년대 들어 세계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인권·여성운동의 흐름이 계속되면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여성인권 및 전쟁범죄의 시각에서 다뤄지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본 보수우익 정치인들은 이에 일본의 전통과 정체성을 호소하며 ‘보통국가론’을 주장, 패배적인 ‘자학사관’을 극복하자며 과거사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자민당 보수 의원들은 ‘종전 50주년 국회의원 연맹’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소장파 의원모임’ ‘밝은 일본·국회의원 연맹’ ‘일본회의국회의원간담회’ 등의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후원하고, 고노담화 철회를 요구했다.

일본 우경화는 아베 내각이 들어서면서 더욱 짙어지고 있다. ‘일본회의국회의원간담회’는 대표적인 보수우익계 정치 조직으로 이 단체 소속 의원들이 아베 내각의 70%를 차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06년 일본군위안부의 강제성과 관련해서 집에서 위안부로 강제로 끌고 나가는 ‘협의의 강제성’과 위안부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하에 있었다는 ‘광의의 강제성’으로 구분한 뒤 전자는 아직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조태용 외교부 1차관(오른쪽)이 6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왼쪽)를 초치해 일본의 고의적인 고노담화 검증과 관련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조태용 외교부 1차관(오른쪽)이 6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왼쪽)를 초치해 일본의 고의적인 고노담화 검증과 관련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국제사회는 일본군위안부의 강제성은 물론 성노예제의 한 형태라고 보고 있다. 지난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 여성폭력 특별보고관 라디카 쿠마라스와미는 “피해자들이 당한 강제 매춘, 성적 압력, 학대,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윤간, 심각한 육체의 학대 등을 고려할 때 ‘위안부’보다는 ‘군 성노예’라는 용어가 훨씬 더 정확하고 적절하다”고 말했다. 특히 식민지 시기 국가총동원법이 강화돼 식민지 조선인들이 총체적으로 동원되는 과정에서 군 위안부 동원이 사기와 폭력에 의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군 위안부 제도가 강제노동조약을 위반했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시하 여성침해의 보편성과 역사적 특수성’ 연구(2003)에서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전체적으로 전시하 식민주의적 강제 성 동원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고노담화 검증에 대해 강도 높게 질타한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은 2일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피해자 분들에게 마음의 큰 상처를 주는 일이고 국가 간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며 국제사회의 준엄한 목소리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질타했다.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는 4일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고 고노담화 검증에 대한 규탄결의문 2건을 채택했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 일로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 6월 8일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91)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죄를 듣지 못하고 별세했다. 김복동(88) 할머니는 지난 6월 25일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서 “우리가 돈 때문에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며 “역사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데, 왜 진실을 망각하고 고노담화 자체도 훼손하려 하느냐”고 비판했다. 현재 정부에 신고된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 237명 가운데 생존자는 54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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