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기원 프로기사회 31대 최장 김효정씨
6개월 아들 안고 선거 출마
최초·최연소 여자 기사회장…바둑 대중화 앞설 것
“영화 ‘스톤’ ‘신의 한 수’에 이어 오는 10월에는 드라마 ‘미생’이 방영된다고 하네요. 세 작품 모두 ‘바둑’을 소재로 하고 있어요. 바둑의 대중화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기대 됩니다.”
침체기에 빠졌던 바둑계가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대중문화계에 ‘바둑 바람’이 불고 있어서다. 프로 2단인 김효정(33·사진) 한국기원프로기사회장은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가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개봉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바둑의 대중화’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걸고 선거에 나섰던 만큼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져서다. 김 회장은 지난해 10월, 프로기사회 46년 역사상 첫 여자 기사회장이자 역대 최연소 회장으로 당선됐다. 당시 6개월 된 아들(세훈)을 안고 찍은 선거 포스터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사실 선거 출마 전 주위에서 많이 말렸습니다. 일단 여자가 회장 선출직에 나서는 경우도 처음이었고, 갓난아이가 있어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겠다’라는 반응이었죠. 무엇보다도 한때 1000만 명에 이르렀던 한국의 바둑 인구는 현재 70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어요. 어려운 시기라 우려가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위기이자 기회인 이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자는 마음으로 출마를 결심했죠.”
여성으로는 최초로 한국프로기사회장에 취임한 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 회장은 “이제 좀 여유가 생겼다”며 웃어보였다. 1996년 입단해 여류국수전·여류명인전 등의 본선에서 활약했던 그는 KBS 바둑TV 진행 및 해설, 군부대 강의를 비롯해 바둑의 저변 확대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취임 후에도 외부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프로기사들의 활로를 바둑 보급을 통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대학에서 교양바둑을 채택해 프로기사들이 강연하는 과정을 준비 중이에요. 청소년들의 방과 후 수업, 노인대학, 복지시설에도 바둑교실을 열려고 하고 있어요. 임신부의 태교에도 바둑이 좋아 산부인과에도 도입을 건의해 볼 생각입니다.”
김 회장이 바둑에 강한 애착을 갖는 이유는 그만큼 자신 있기 때문이다. 바둑을 좋아했던 아버지를 따라 기원에 간 것을 시작으로 김 회장은 9살 때 바둑에 입문, 16세에 프로기사로 데뷔했다.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난 언니 현정씨도 일본기원 소속 프로 3단으로 활동 중이다.
“바둑은 연령불문, 남녀노소 모두에게 정말 좋은 스포츠예요. 스포츠라는 게 나이가 들면서는 체력적 한계가 있는데, 바둑알만 들을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또 바둑을 하면 집중력이 좋아지고 인내심을 기를 수 있어요. 아이들은 창의력과 공간지각능력을 키울 수 있죠. 저도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이지만, 바둑을 둘 때만은 차분해져요. 자랑일지도 모르지만 저희 아들도 바둑을 하려고 하는지 돌잡이 때 바둑알을 잡았어요.(웃음)”
바둑의 매력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김 회장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동안 프로기사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물론 한국바둑계의 발전을 위해 힘쓰겠다고 전했다.
“바둑은 제 삶입니다. 프로기사회 회장으로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10대부터 70대까지 290명의 프로 기사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덴 여자인 저에게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며느리, 딸, 아내, 엄마 등 다양한 역할을 해내듯 섬세함과 소통을 장점으로 프로기사회를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김 회장은 책상 서랍에서 4가지 색상의 바둑알을 꺼냈다. 김 회장은 기자에게 “컬러 바둑판은 바둑이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는데 제격”이라며 “바둑을 배우는 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의 바람대로 더 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