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월드컵 16강전인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경기를 앞둔 지난 2010년 6월 26일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거리응원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인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경기를 앞둔 지난 2010년 6월 26일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거리응원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월드컵 축구팬들은 결승전까지 잠을 설칠 것이다. 그러나 4년에 한 번 등장해 애국 축구를 즐기는 ‘붉은 팬’들에게 월드컵은 이제 화제가 아니다. ‘붉은 팬’들은 국내축구 K리그에 평소 1초의 관심도 두지 않지만 4년에 한 번 ‘대~한민국’을 외치며 운동의 승패를 국가의 영욕과 연결시킨다. 또한 함께 모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분위기를 즐긴다. 그래서 한국의 예선 탈락이 확정된 순간, 다른 나라보다 우월한 모습이 더 보이지 않게 된 순간, 온갖 쓰레기를 남겨두고 광장을 떠났다. 2002년 월드컵 때 승리에 승리를 하는 대한민국의 ‘우수함’에 세계 언론이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시청 앞 광장의 하나 남은 담배꽁초까지 자발적(?)으로 주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자 감독의 자질과 준비 부족, 선수들의 나약한 정신력, 축구협회의 무능력 등 다양한 지적이 또 나왔다. 월드컵 시작 전에 잘 못 보던 지적이다. 전문가들이 몰라서 안 했을까? 아니다. 감히 이야기를 못 했을 것이다. “~한 한계가 있어서 16강 진출은 어렵다”라고 누가 말했나? 구석구석 찾으면 모르겠지만 알만하게 언론에 노출된 전문가들은 그런 이야기를 안 했다. 왜? 예측할 만한 전문지식이 없어서? 아니다. 사실 못 한 것이다. 객관적인, 그런데 너무나 솔직해서 월드컵 때 반짝하는 애국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이야기를 누가 할 수 있었을까? 쏟아질 비난을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몇 게임 단기전이 갖는 예측 불허 변수를 고려하면 차라리 입 다물고 중간쯤 가는 것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 프로축구 리그는 아직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팬들의 외면만 당하고 있다. ‘월드컵 붉은 팬’들은 4년 주기로 월드컵 축구에 눈을 돌린다. 사실 지난 2002년 이후 예선에서 가끔 했던 승리, 한 번의 16강 진출은 행운 중 행운이었다. 물론 노력의 결과로 얻은 행운이었다. 평소 안 하던 공부를 몰아쳐서 하룻밤에 했는데, 그 다음 날 시험에 마침 공부했던 문제가 나와서 성적이 좋게 나왔던 것처럼. 월드컵 성공의 가장 중요한 기초는 국내 K리그의 발전이다. K리그의 정착과 발전이 없다면 전망도 없다. 선수 전원이 유럽 등 해외에서 뛰는 아프리카 국가팀이 아무리 잘해도 16강, 8강에서 멈추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월드컵 축구에서 보는 우리의 모습은 전체 사회의 모습을 투영할 뿐이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선거 때마다 하는 공약대로 복지를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집권을 하고 의원 자리를 꿰차면 그 돈 없이도 복지를 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복지관 몇 개 늘리고, 무슨 센터 몇 개 더 만들고, 사회복지 공무원을 몇 명 늘리면서 복지를 한다고 한다. 불법·편법으로 상속 과정에서 재벌이 수천 억, 수조 원을 빼돌려도 처벌 하나 제대로 안 받는다. 그리고 재벌이 몇 백억씩 가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내놓으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한다고 좋아한다. 그러는 사이에 중산층은 붕괴하고 양극화는 더 심해진다.

복지의 K리그는 연대다. 그 연대의 대표적 표현은 높은 국민 부담률이다.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소득과 자산에 걸맞게 부담해야 한다. 연대를 기초로 중산층 붕괴를 막을 고용복지 체계, 의료보장, 그리고 주거지원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매주 새로운 사연으로 모금을 호소하는 방송은 월드컵 때 가끔 반짝하는 응원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한국 국가 대표팀이 1승을 하고 16강, 8강에 진출하듯이 몇 번은 많은 복지재정을 모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을 서유럽 복지국가 수준으로 높이면 그런 방송은 필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축구처럼 복지를 한다. 높은 국민부담률이라는 하부구조가 없다. 복지관, 센터, 사회복지 공무원을 쥐어짜서 나눠주는 부스러기 복지를 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심지어 복지가 지나치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이대로 간다면, 이번 월드컵 예선 탈락처럼 부스러기 복지의 맨얼굴을 보게 될 날이 곧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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