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 변화 요구 거세질 듯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6월 24일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님을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밝히며 자진 사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총리로 지명한 지 14일 만이며, 지난 17일 “사퇴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지 일주일 만이다. 전관예우 파문으로 사퇴한 안대희 전 후보자에 이어 문 후보자까지 2명의 총리 후보자가 연쇄 낙마한 경우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문 후보자는 총리 후보자 지명 직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언론인 시절 썼던 다수의 보수성향 칼럼에 이어 지난 11일 KBS가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 뜻’이라는 취지의 문 후보자의 발언이 담긴 교회 강연 동영상을 보도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이어 지난 4월 서울대 강의에서 “일본에 위안부 문제로 사과받을 필요가 없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문 후보자는 ‘역사인식 논란’이 불거지자, 처음에는 해당 보도를 한 언론사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정면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15일 약식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발언으로 상처받으신 분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해명했다.
청와대는 처음에는 여론을 살피며 관망했다. 그러나 논란이 계속되고,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자,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16일로 예정됐던 임명동의안 재가를 미루면서 기류는 급변했다. 여당에서조차 문 후보자에 대한 반발 기류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친박(친박근혜)계 좌장격인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지금 시점에서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스스로 물러나는 것도 좋지 않겠나 싶다”며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문 후보자는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돌아올 때까지 저도 여기서 차분히 앉아서 제 일을 준비하겠다”며 자진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는 이튿날에도 “입장 변화가 없다”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확고했던 문 후보자의 입장이 달라진 것은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돌아온 후 직후다. 국가보훈처가 23일 문 후보자의 조부 문남규 선생이 독립유공자 문남규 선생과 동일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것이 사퇴의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사청문회를 통해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문 후보자의 바람이 일정 부분 해소된 것이다.
청와대는 이번 일이 자진사퇴로 마무리되자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직접적으로 지명 철회라는 카드를 뽑아들 경우 청와대의 인사참사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이다. 문 전 내정자의 사퇴 후 박 대통령은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해서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부디 청문회에서 잘못 알려진 사안들에 대해서는 소명의 기회를 주어 개인과 가족이 불명예와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인사 실패가 아닌 언론과 정치권, 여론의 책임이 크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에 분명하게 선을 긋는 모양새지만 연이은 인사 실패로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작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됐다. 잇단 총리 후보자 낙마로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청와대 인사위원회 위원장인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퇴진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청와대는 곧바로 새 총리 후보자 인선에 착수했다. 그러나 한동안 국정 공백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도덕성과 자질을 갖춘 인물을 찾고, 청문회를 거쳐 새 총리로 정식 임명되려면 한 달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