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참여 이끌어낸 말레이시아 페낭 성공적
법제도·부처 간 협업·민관 거버넌스도 뒷받침돼야
국가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미리 분석해 남녀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예산을 편성하는 ‘성인지예산제(GRB·Gender Responsive Budgeting)’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법제도를 기반으로 부처 간 연계 협력이 밑바탕이 돼야 하며, 특히 정부 부처 가운데 재정부(기획재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성인지예산제가 ‘풀뿌리’, 즉 지방정부까지 뿌리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 6월 20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아시아 국가의 GRB 운영 현황과 성과:선도적 성평등 정책의 발전 경험 공유를 위한 가능성 탐색’ 국제 세미나에서 야미니 미슈라 아시아·태평양 유엔여성(UN WOMEN) 사무소 GRB 전문관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제도 운용 현황을 소개하고 발전 방안을 제안했다.
미슈라 GRB 전문관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30여 개국의 성인지예산제 현황을 살펴본 결과, 재정정책이 남성과 여성에게 상이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재정정책이 다른 어떤 정책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성평등을 강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성인지예산제의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고, 예산을 다루는 재정부가 성인지예산제를 총괄하는 국가의 경우 성인지예산제 정착이 훨씬 수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슈라 전문관은 “성인지예산제가 제대로 추진되려면 제도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주체에게 맡겨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성평등 정책을 담당하는 여성부뿐 아니라 재정부가 제도 추진과 모니터링에 참여하면 다른 부처와의 긴밀한 협업도 훨씬 쉽게 구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각 영역의 모든 주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며, 특히 풀뿌리 조직까지 확산돼야 제도로 인해 여성들의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에서 시작한 성인지예산제가 지방정부로까지 성공적으로 안착한 대표적인 사례가 말레이시아 페낭이다. 특히 상의하달식(Top-Down) 방식으로 진행되는 성인지예산제와 상향식인 주민참여예산제 개념을 함께 도입한 대안적 성인지참여예산제도라는 평가를 받는 이날 알로야 바카르 페낭 여성개발원(PWDC) 성인지예산 사업 감독관은 페낭에서 성인지예산제가 뿌리 내린 과정을 소개하며 주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카르 감독관은 “아파트 건물이 노후한 암팡안과 잘란숭아이 지역에서 아파트 단지의 편의시설 마련을 위해 연령과 젠더를 기준으로 나눠 이슈를 짚고, 토론을 하고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투표를 추진하는 등 주민들이 직접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며 “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주민들의 역량 강화와 여성들의 풀뿌리 리더십 강화가 이루어지고, 시민사회와의 협력도 이루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성인지예산제에 대한 지속적인 재정지원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이 같은 성과를 이뤘다”며 “아직 규칙과 절차, 역할과 사고방식, 노동 문화, 우선순위에 대한 분쟁, 정치적인 의지, 재정지원 보장 등 해결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도전 없이 진보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