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는 여성의 마음은
“즐거움이 넘치기”보다는 “살아서만 돌아와”가 아닐까

 

2007년 아들을 이라크로 보내는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자 아들인 상병이 눈물을 닦아 주고 있다.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2007년 아들을 이라크로 보내는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자 아들인 상병이 눈물을 닦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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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여성신문

올봄 전쟁처럼 끔찍한 일을 겪고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는 마음은 참 복잡하다. 집중된 지역에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경험이란 점에서 전쟁을 치르고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전쟁을 겪은 지금의 70대 이상의 사람들이 겉으로는 멀쩡하게 수십 년 살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 속이 멀쩡했을까.  

그것은 꼭 전쟁터에 나가있던 군인·남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쟁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나 노래들을 들춰보면, 여자나 아이들이 겪었을 고통이 드러난다.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제/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 한 많은 미아리고개’(이해연 ‘단장의 미아리고개’)처럼, 납북되는 남편과 이별하는 아내의 절규가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절절한 노래도 있다. 하지만 가사의 이면을 조금 더 들춰보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요구하는 노래도 꽤 있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아 아아아 그 목소리 그리워

                        신세영 ‘전선야곡’ 1절(유호 작사·박시춘 작곡, 1952)

군인과 어머니의 조합이란, ‘우정의 무대’의 ‘고향 앞으로’ 같은 코너에서 하도 지겹도록 보아 상투적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언제나 마음을 짠하게 울린다. ‘꼴랑’ 2년 입대하는 요즘의 군인들도 ‘엄마’란 말에 눈물이 글썽글썽한데,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전쟁터로 나갔던 군인의 마음은 오죽했으랴. 이 노래도 클라이맥스로 가는 부분에 ‘어머님의 목소리’란 가사가 배치되고, 그 뒤는 가사 없이 ‘아아’로 연결된다. ‘어머님’이 나온 판국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리얼리티에서 크게 어긋나는 지점이 보인다. ‘어머님의 목소리’ 대목에서 감동하느라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장부의 길’이란 구절이다. 생각해 보자. 전쟁터로 떠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장부의 길’을 일러주었을까? 어머니가 과연, 장부답게 용감하게 싸우라고 했을까?

글쎄, 그런 어머니도 있기야 했겠지만, 대부분의 어머니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제발 살아서만 돌아오라’고 했을 것이다. 이게 리얼리티다. 그런데 이 노래는 그걸 크게 훼손했다.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검열을 통과하며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대중가요였기 때문이다. 만약 ‘살아만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목소리’라고 썼다면 과연 이 노래가 발표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이런 리얼리티의 의도적 왜곡은 6·25 때만이 아니다. 일제 말의 태평양전쟁 때 나온 군국가요 ‘지원병의 어머니’는 ‘나라에 바치자고 키운 아들’ ‘눈물을 흘릴소냐 웃는 얼굴로 깃발을 흔들었다 새벽 정거장’ ‘기운차게 떨어지는 붉은 사쿠라 이것이 반도 남아 본분일 게다’ ‘살아서 돌아오는 네 얼굴보다 죽어서 돌아오는 너를 반기며’라고 노래한다.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훌륭한 어머니는 ‘공식적으로는’ 눈물 흘리며 슬퍼하면 안 되었다. 그건 애국적이지 못한 국민이나 하는 짓이니까. 

전쟁터의 후방에 있는 여자들을 일제는 ‘총후(銃後)부인’이라 불렀다. 전쟁기 여자들은 이 모범적인 총후부인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받았다. 남편과 아들을 기꺼이 전장에 내보내고, 충성을 다해 싸울 것을 격려하면서, 자신은 후방에서 열심히 노동하거나 부상병을 돌보고, 아이를 ‘미래의 군인’으로 키워야 했다. 정말 비인간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6·25 때에도 이런 ‘총후부인’을 연상케 하는 노래들이 적지 않다.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도 그러하지만, ‘아내의 노래’는 그 정도가 심하다.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옵기에/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가신 뒤에 내 갈 곳도 님의 길이요/ 바람 불고 비 오는 어두운 밤길에도/ 홀로 가는 이 가슴에 즐거움이 넘칩니다 

                        심연옥 ‘아내의 노래’ 1절 (유호 작사·손목인 작곡, 1952)

남편을 전장으로 내보낸 아내가 ‘가슴에 즐거움이 넘칩니다’라고 노래하는 ‘아내의 노래’는 확실히 일제 말의 냄새가 풍긴다. 하긴,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두 전쟁은 시기적으로 너무도 가까이에 있었으니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6·25는, 1945년 광복 후 불과 5년 만에 터졌다. 1944년에 일괄 징병 명령을 받고 북만주와 동남아시아의 전쟁터로 내몰렸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20세의 조선인 청년들은, 26, 27세에 또 6·25의 전쟁터에 나가야 했다. 지금의 노인들을 인터뷰해 보면, 두 전쟁 때의 기억이 종종 헷갈린다.

이들을 보냈던 아내와 어머니들은 ‘장부의 길’ ‘즐거움이 넘칩니다’ 같은 노래를 수십 년 동안 방송에서 들으며 아무렇지도 않았을지, 나는 정말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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