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결혼식에 가보면 신부들이 결혼식장에서 방긋방긋 웃지만, 예전에는 그런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전통적 혼례에서는 결혼식을 처가에서 치르고 며칠을 잘 쉰 이후에, 말 탄 신랑과 가마 탄 신부가 시집으로 향하게 되는데, 아마 이 대목에서 여지없이 눈물이 터져나왔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중가요 속의 꽃가마 탄 신부는 모두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는 중 갑순이는 시집을 갔다나요/ 시집 가는 가마 속에 눈물이 흘렀대요/ 그러나 그것은 가마 속 일이요/ 겉으로는 음음음 음음음음/ 아무런 일 없는 척하였소
이병한·함석초 ‘온돌야화(溫突夜話)’ 2절(김다인 작사·전기현 작곡, 1939)
수양버들 춤추는 길에 꽃가마 타고 가네/ 아홉 살 새색시가 시집을 간다네/ 가네 가네 갑순이 갑순이 울면서 가네/ 소꿉동무 새색시가 사랑일 줄이야
이연실 ‘새색시 시집가네’(김신일 작사·작곡, 1971)
‘온돌야화’는 작사자가 월북 후 구전되다가 1960년대에 김세레나의 ‘갑돌이와 갑순이’로 부활한 노래이며, ‘새색시 시집가네’는 가수 이연실의 최고 인기곡이다. 두 노래 속 신부는 첫사랑 남자를 잊지 못해 우는 것으로 설정돼 있지만, 대중예술이란 것이 대중의 일반화된 경험을 좀 더 자극적인 방식으로 가공해 내놓는 속성이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에는 우는 신부들이 참 많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여자들에게 결혼이란, 여태까지 맺어온 관계와 이별하는 일이고 고생스러운 시집살이의 시작임이 분명했으니 어찌 눈물이 나오지 않았겠는가.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결혼 사진 속 신부는 얼굴이 굳어 있다. 분명 슬픈 건 아니었지만, 결혼식에서 신부는 웃으면 안 된다는 굳은 금기가 있었다. 심지어 ‘신부가 웃으면 첫딸 낳는다’는 말로 신부의 행복한 웃음을 금지했다. 지금 이 말을 들으면 “아니, 첫딸이 어때서?”라고 발끈하게 되는데, 아마 그 시대의 감각으로는 결혼식에서 웃는 신부란 좀 눈치 없고 주책없는 성격으로 보였던 것이 분명하다. 이런 신부라면, 마치 첫딸 낳은 며느리처럼 시부모에게 그리 귀여움 받지 못하는 경우였을 터이니까.
결혼을 아름답고 행복한 것으로 그려내는 노래가 나온 것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60년대식 스탠더드팝 스타일 대중가요의 효시라 할 수 있는 1956년 ‘청실홍실’부터 시작됐다 할 수 있다.
청실홍실 엮어서 정성을 들여/ 청실홍실 엮어서 무늬도 곱게/ 티 없는 마음속에 나만이 아는/ 음음음음 음음음음 수를 놓았소
안다성·권혜경 ‘청실홍실’ 1절(조남사 작사·손석우 작곡, 1956)
여자의 입장에서 결혼을 꿈꾸는 것이 행복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 이렇게 후대에 이르러서라는 점은 상당히 놀랍다. 결혼의 꿈이 행복하다는 것과 결혼의 현실이 행복하다는 것과는 별개지만, 어쨌든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꿈’과 ‘기대’의 한계 내에서나마 행복한 결혼을 노래할 수 있었다. 1960년대야말로, 전후 폐허 분위기에서 벗어나 근대화와 산업화의 희망에 넘쳐 있던 시대였고, 근대화의 분위기에서 ‘남자네 집’으로의 편입이 아닌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합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아직 자신만의 자아실현의 꿈을 갖기가 쉽지 않았고,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사는 것을 당연시했으며, 정부의 정책부터 사회 계몽의 초점도 모두 가정의 안정을 위해 여성이 현모양처가 돼야 한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내 이름은 소녀 꿈도 많고/ 내 이름은 소녀 말도 많지요/ 거울 앞에 앉아서 물어보면은/ 어제보다 요만큼 예뻐졌다고/ 내 이름은 소녀 꽃송이같이/ 곱게 피면은 엄마 되겠지
조애희 ‘내 이름은 소녀’ 1절(하중희 작사·김인배 작곡, 1965)
소녀의 꿈이 ‘꽃송이같이’ 피어 ‘엄마’ 되는 거라니! 지금 감각으로는 뜨악하지만, 당시는 초등학교 여자아이들조차 ‘장래 희망’ 난에 ‘현모양처’라고 적었던 시대였다. 이 보수적 분위기가 놀라운가? 그래도 결혼을 슬픔으로 노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세상이 꽤 안정된 것이다.
이 시기 청년이었던 이들은 지금 노년이 됐고, ‘장래 희망’에 ‘현모양처’를 적었던 어린이들은 50대 후반과 60대 초반에 도달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도, 나이 찬 미혼들이 눈에 띄기만 하면 “언제 결혼할래?”라고 독촉한다. 이 다른 세대는, 함께 살아도 같은 세상에 사는 게 아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