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개나리, 벚꽃이 화사하게 아파트 마당을 별천지로 만들어준 날, 그날이 엄마의 생신이었다. 아니, 그날이 엄마의 생신은 아니었다. 화요일이었는데, 평일 저녁은 식구들 모이기가 어려우니 이틀을 앞당겨 일요일 저녁에 모인 것이다. 그런데 그날 엄마가 늘 ‘우리 장손, 우리 장손’ 하는 조카가 오지 않았다. 과외 받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모두들 당연하게 여겼다.

중학교를 들어가면 가족 모임에서 아이들이 빠지기 시작한다. 시험 기간이라고 제사에 빠지고, 학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 날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용돈이라도 줄 수 없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라면 명절 때도 손자손녀를 보지 못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굉장히 빠르게 변했다. 너무도 변해서 80년대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적 가족 모델을 연구했던 사회학자들이 있었다는 얘기가 아득하기만 하다.

76번째 생신을 맞은 엄마는 누구보다도 건강하시다. 매일 아침 국선도를 하신 지 벌써 15년, 엄마는 몸도 유연하고 마음도 유연하다. 그런 엄마의 꿈은 자식과 잘 지내는 것이다. 생일날, 제삿날, 설날, 추석날만이라도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 것이다. 엄마가 며느리였을 때 당연했던 그 일이 시어머니가 되고 나니 며느리를 억압하는 일이 됐다는 사실에 엄마는 아직도 당혹해한다.

나는 종종 가족이 변했음을 이야기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족으로 여겨주면 고맙지만, 가족으로 끼려 하면 안 된다고. 결혼하는 순간 경계를 분명히하지 않으면 가족은 이웃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고.

더구나 요즘은 결혼이 늦다. 대부분이 서른을 넘기고, 마흔 가까이에 결혼하는 친구도 있으니 자기 삶의 스타일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시댁이라는 이유로, 처가라는 이유로 뭔가를 요구하고 재촉하고 힐난하면 튕겨나간다.

친구들은 반반이다. 시어머니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친구, 시어머니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친구. 친구 중 한 명은 명절증후군을 확실하게 앓고 있다. 양평인 시댁에 가면 모인 가족이 30명은 넘는단다. 거기서 문화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복작복작 지내다 자고 오는 게 너무 싫다는 것이다. “가지 말지? 남편과 아이들만 보내고.” 남편이 그런 융통성이 있으면 속 터질 일이 없다고 친구가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가기 싫다는 시댁에 왜 함께 가자고 싸우는가.

요즘 결혼한 여성들이 TV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시댁은 모두 죄인이다. 저렇게 말이 많고 탈이 많으니 앞으로는 정말 명절이나 제사, 시어머니, 시아버지 생신이 되면 원래의 가족만 모여야 할 것 같다. 이제 효도는 자기가 해야 하는 것이지 아내에게, 남편에게 넘길 수 없겠다. 나는 생각한다. 그전 세대의 시부모를 부담스러워했던 우리 세대는 앞으로 아예 며느리에게, 사위에게 효를 바라지 않을 거라고.

나는 엄마를 좋아한다. 나는 ‘엄마’라고 불러도 되는 엄마가 있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며느리들 눈치 보는 게 싫다. 내가 엄마에게 원하는 것은 돈을 많이 물려주기 위해 아끼기만 하는 엄마가 아니라 친구들과 놀러 다니며 친구를 가족처럼 여길 줄 아는 엄마고, 늘 자식 걱정에 반찬 싸들고 찾아오는 엄마가 아니라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서 도란도란 놀기 좋아하는 엄마라고. 내가 엄마에게 원하는 것은 자식을 떠나 사는 게 좋다고, 행복하다고 자기 삶을 긍정하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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