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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길에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외길 중간에는 채소밭이 있다. 그

리고 채소밭 한 허리에는 퇴비무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름철에는

파리들의 집합장인데다, 음식물 쓰레기와 동네의 개똥들이 모여 푹

푹 썩는 냄새가 역해서 그 길을 걸어서 지나칠라면 코를 감싸쥐고

거의 뛰다시피 가야 했다. 이사오고 처음 우리 집을 찾아오는 사람

들도 ‘시골이라 공기가 참 맑다’고 깊은 숨을 들이쉬다가도 그 지

점에만 오면 ‘코 평수’를 최대한 줄였다. 자동적으로.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채소밭을 가꾸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옆에서 마스크도 없이 하루종일 일을 하고 새참도 드시는 것이었

다. 아마 냄새에 만성이 되어서 코가 무뎌진 모양이었다.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자 파리들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냄새

도 얼었는지 코를 싸쥘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그 더러운 퇴비 더미

를 보기가 싫었다. 그래서 고개를 외로 꼬고 다녔다.

겨울이 거의 물러가고 살그머니 봄기운이 느껴지는 어느날, 집을

나서면서 그 지점 가까이에 이르러 나는 습관적으로 코를 막고 고개

를 외로 꼴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퇴비무덤이 온데간데 없이 보이

지 않았다.

어머나! 어디갔지?

그토록 싫어하던 퇴비무덤이건만 나는 눈을 굴려 그것을 찾고 있었

다. 정이라는 게 뭔지, 몇 달을 매일 보고 산 퇴비무덤인지라, 그 정

때문에 반사적으로 찾고 있었던 것이다.

퇴비무덤은 작은 더미로 나뉘어 밭위에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할아

버지와 할머니가 쇠스랑으로 아직 얼어 있는 땅을 달래가며 퇴비를

흙과 섞고 있었다.

아, 정말 봄이구나. 농사지을 준비를 하시는 걸 보니.

그 밉던 퇴비무덤이 제비보다도 빨리 봄을 알려주는 전령이 된 것

이다.

초여름이 되자 그 채소밭은 여러가지 푸성귀로 가득했다. 동네사람

들은 그 채소밭을 보면서 ‘환상적’이라는 표현까지 아끼지 않았

다. 겨울을 견딘 봄파, 줄을 맞춰 늘어선 고추와 깻잎, 넓은 치마폭

을 펼쳐 앉은 듯한 호박, 물골이 지나는 아랫녘에 파릇한 미나리…

그래, 퇴비가 이렇게 좋은 거다. 화학비료 하나도 안 쓰니까 이렇게

실하고 맛도 달구나

그 댁에서 김을 매며 가져온 채소들을 먹으며 어머니는 ‘환상적인

채소밭’의 결실에 탄복하셨다.

그 무렵부터였을까. 퇴비무덤이 조금 덜 미워보이기 시작한 것이.

본격적인 여름에 접어들면서 우리 집은 음식 쓰레기와의 전쟁이 시

작되었다. 쓰레기차는 매주 수요일에 한번 오는데 음식쓰레기는 매

일 나왔다. 과일을 많이 먹으니 그 껍질이 만만치 않았다. 쓰레기 비

닐에 담아두자니 부패가 되고 벌려 놓자니 파리가 들끓었다. 하루는

옆집 아주머니가 개똥과 과일 껍질을 쓰레기 함지에 담아 가지고 나

가는 것을 보았다. 지켜보니 그 퇴비무덤에 가져다 버리는 것이었다.

채소밭에서 좀 떨어진 곳에 집이 있는 채소밭 할아버지는 전날밤에

집에서 나온 퇴비거리를 자전거에 싣고 나오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도 퇴비무덤에 가세하기로 허락을 받고 나니

큰 시름을 던 듯 했다.

우리가 먹은 과일껍질과 우리집 개똥 등이 뒹구는 퇴비무덤은 더 이

상 코를 쥐거나 고개를 꼬지 않게 만들었다. 잘 익어야 좋은 거름이

될텐데 하고 기원하는 마음까지 생겨났다. 냄새나고 더러운 퇴비무

덤임에는 변함이 없건만 그 효용가치를 알게되고 거기에 ‘내’가

연루되자 대하는 마음가짐이 이렇듯 달라진 것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외숙모가 첫아기를 낳으셨다. 애기구경을

갔는데 마침 똥을 쌌다. 엄마와 외숙모가 그 더러운 똥을 들여다보

며 ‘잘 쌌다, 아주 좋다’고 하는데 나는 이해가 안 되었다.

“아이구, 너도 다 이러면서 키웠어. 똥이 노란 게 얼마나 이쁘냐?

낼 아침에 국 위에 동동 띄워주면 아마 게란국인 줄 알걸”

엄마의 놀림에 나는 그날 이후 계란국을 먹지 않았다. 그 ‘아기’

가 서른이 넘어 얼마전 결혼할 때 우리는 그 얘기를 하며 웃었다.

나보다 그 똥의 당사자가 더 ‘더럽다’고 난리였다.

“아이구, 너 시집가서 애기 낳아봐라. 그 똥 먹으라면 먹을 수도 있

을테니, 제 자식 똥은 안 더러운 거야.”

나는 가만히 속으로 뇌까렸다.

“그럼, 정든 똥은 안 더럽지.”

바로 어제 그 사촌동생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똥을 싸던 아기가 자

라서 이제 새 아기의 똥에 정을 들이는 자연의 순환이 계속되는 것

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퇴비무덤이 좋은 푸성귀를 꿈꾸며 썩고 있듯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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