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사랑’ 정의 변경에 성소수자 배제 논란
국립국어원 ‘사랑’ 정의 변경에 성소수자 배제 논란
  • 엄수아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4.04.01 09:56
  • 수정 2014-04-01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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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 뜻으로 수정? 다른 사랑은 차별하고 배제"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메인화면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메인화면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랑'의 정의를 '남녀 간의 사랑'으로 다시 좁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등 논란이 되고 있다.

31일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11월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 '사랑'과 관련한 뜻풀이에 대해 언어학적·사전학적 뜻을 재점검하고 수정했다고 밝혔다.

국립국어원 누리집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사랑'의 4번째 정의는 '남녀간의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돼 있다. 사랑을 남녀의 일로 제한한 것으로 지난 2010년 경희대에 다니고 있던 대학생 5명이 성소수자 차별이 될 수 있다고 민원을 넣어 '사랑', '애인', '애정', '연애', '연인' 등 5가지 단어의 뜻풀이가 바뀌었으나 다시 '남녀'로 한정해 넣은 것. 이번 결정으로 '연애'는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이라고, '애정'은 '남녀 간에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로 바뀌었다.

이같은 결정은 동성애 옹호가 아니냐는 기독교 등의 반발과 민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지난해 10월 공문을 통해 "사랑 등 다섯 단어를 정의하면서 남녀 또는 이성을 모두 삭제하고 '두 사람'으로 수정함으로써 의미를 모호하게 하고 왜곡시키는 것은 동성애를 조장, 방조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수정을 요청했다.

황용주 국립국어원 박사는 1일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 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제보들을 받고 저희가 검토해서 수정을 하게 되는데, 이번 사랑 관련된 것은 저희가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의 해석을 다르게 했다기보다는 지금 수정된 뜻풀이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사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런 전형적인 쓰임이 사전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라는 지적을 수용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0년 문제 제기했던 권예한(경희대·4학년)씨는 이에 "굉장히 실망을 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본질적이고 좀 더 포괄적인걸 세부적으로 (수정)했다고 이야기하는데 굉장히 말이 안 된다"고 말한 뒤 "영어에 사랑을 뜻하는 러브(Love)라는 단어의 정의를 보면 'someone'이라고 '남녀'란 표현이 아니라 누군가, 이런 식으로 표현을 쓰고 있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런 나라들도 명사에 여성용, 남성용이 있지만 그 단어 정의 자체에 남녀 간의 사랑, 이렇게 특정돼 있지는 않다. 사실 거의 전 세계 언어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고 말했다.

권씨는 "국립국어원 분께서 '전형적'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전형적을 구분하는 것도 사실은 자의적인 것"이라며 "저희가 언어를 바꾸는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강간죄라는 법조항에 '부녀자'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 트렌스젠더는 부녀자로 볼 수 없다고 해서 성폭행을 당했는데 강간죄가 성립이 안 된 경우가 있었다. 이런 사례들을 만들어낸 게 결국 언어이고, 언어는 그 사회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사전의 중요성을 많이 간과하고 계신 것 같다"고 비판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등 20개 단체가 모인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이날 성명을 통해 "언제까지 ‘사랑’은 ‘남녀’간에만 하는 것이라는 오만함을 고집할 것인가.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내디뎠던 한 발자국을 되돌려버린 이번 재개정을 규탄한다"며 "동성애문제대책위원회 등 성소수자 혐오세력들은 자신과 다른 사랑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데 힘쓰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자세를 배우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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