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이 ‘말괄양’이던 대찬 여자 윤심덕
‘사(死)의 찬미’와 ‘짝’ 출연자 자살,
세 모녀 자살… 애도 모르는 잔인한 여론

 

성악가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담은 영화 ‘사의 찬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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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좋은 봄날에 누가 ‘죽음’처럼 우울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랴마는, 사람들이 줄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세상에서 죽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텔레비전 프로그램 ‘의 출연자가 자살한 것을 두고 게시판에 ‘민폐 쩐다’라고 쓰는 사람과, 이를 ‘낚시 기사’로 뽑아 누리꾼들의 클릭을 자극하는 언론들, 궁핍한 세 모녀의 자살 기사 밑에 ‘그래도 고양이 사료와 담배 살 돈은 있었냐’며 빈정거리는 댓글을 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죽음도 착잡하려니와 진정한 애도를 모르는 잔인한 여론이 더욱 기막히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꼭 한 가지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여러 이유로 삶을 지속하는 것이 너무도 괴로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격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 때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오랫동안 젊은 여자들의 죽음은 사랑을 위한 ‘정사(情死)’로 포장됐다. 이 노래부터 그랬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苦海)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윤심덕 ‘사(死)의 찬미’(작사 미상, 이바노비치 작곡, 1926)

 

많이 알려진 바대로 이 노래는 조선 최고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자살하기 직전에 취입한 노래다. 제목이 ‘죽음의 찬미’인 데다가, 와세다대 영문과를 졸업한 당대 최고의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서 투신 자살했으니 세간의 입길에 오르기 딱 좋은 사건이었다. 일본의 음반사들이, 레코드란 게 생소한 조선에서도 이제 유행가 음반 장사를 해도 되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할 정도로 ‘사의 찬미’는 많이 팔렸다. 다 이 극적인 죽음 덕분이었다. 당연히 둘의 죽음은, 처자식 있는 유부남과 처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한 자살로 포장됐고, 이후 1980년대 말까지도 온갖 영화와 연극에서 다 이렇게 그렸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연구자들이 꼼꼼히 연구한 바에 따르면, 둘의 자살이 정말 정사인지가 의심스럽다. 우선 둘이 친구인 것은 맞지만 애인 사이였다는 증거가 별로 없고, 윤심덕은 자살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우진은 자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윤심덕은 별명이 ‘말괄양’일 정도로 대찬 여자였다. 경기고녀를 졸업하고 교사를 하다가, 더 큰 꿈을 가지고 관비유학생이 되어 일본 최고의 음악학교인 관립도쿄음악학교에 가서 공부를 한다. 돌아와 독창회도 하고 토월회에서 여배우도 하지만, 당시 여자가 나서서 노래를 부르고 연기까지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한 기생이나 하는 것으로 취급됐다. 이미 유명 인사가 된 그는 약혼과 파혼 등을 겪으며 스캔들 메이커가 되는 데 지쳤고, 서른을 바라보는 성악가 윤심덕이 당시 조선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막막했을 수 있다. 그런데 김우진은, 이후의 작품 준비로 바쁜 와중이었고, 단지 윤심덕이 오사카에 왔다는 전보를 받고 달려갔을 뿐이다. 그리고 함께 배를 탔고 함께 투신했다. 적어도 김우진의 죽음은, 윤심덕보다 훨씬 우발적이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죽음은 유부남과 처녀가 함께 죽었으니 그저 ‘정사’라고 단정됐다.

1986년 5월에는 서울대 국문과 여학생 박혜정이 한강에 투신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두환정권 말기에, 대학생들이 강제 입대 당해서 죽고, 시위하다 밧줄에서 떨어져 죽고, 스스로 분신자살을 택하는 등, 기막힌 죽음이 줄을 잇고 있던 때였다. 같은 과 학생의 분신 자살을 겪은 박혜정은 ‘이런 현실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한남대교에서 몸을 던졌다. 그가 메모처럼 남긴 시를 바탕으로, 음대 학생이 담담한 느낌의 아름다운 곡을 지었고 민중가요권에서 잔잔히 오래 불렸다.

 

누워 쉬는 서해의 섬들 사이로/ 해가 질 때/ 눈앞이 아득해 오는 밤/ 해지는 풍경으론 상처받지 않으리/ 별빛에 눈이 부셔 기댈 곳 찾아/ 서성이다/ 서성이다 떠나는 나의 그림자/ 음/ 언제나 떠날 때가 아름다웠지/ 오늘도 비는 내리고/ 거리의 우산들처럼/ 말없이 돌아가지만/ 아 사람들이여/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여’(박혜정 시, 김상헌 작곡. 1986)

 

박혜정은 이른바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당시 언론에서, 그의 죽음은, 권력과 저항운동의 격렬한 싸움에 ‘회색’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의 희생양으로 의미화했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의 양비론은 참 편하고 교묘하며, 그래서 잔인하다.

지금도, 세 모녀의 자살 보도를 보고 생계형 자살이 이어지면서, 이런 사건의 언론보도를 자제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나온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여론이, 과연 어디까지 잔인하고 어리석어질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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