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는 일부 사회적 약자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으며 자선 그 자체도 아니다. 나와 가족의 안녕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다 사고, 질병, 노령, 돌봄 공백 등 사회적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구라도 국가와 사회의 도움을 받아 그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제도다. 그래서 세금 내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복지제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누구라도 주민센터, 구청 상담실, 고용센터 등을 찾아갈 수 있는 권리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그런 행동(?)을 수치스러운 일로만 가르쳤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번 돈’을 가끔 ‘좋은 일’에 쓰면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세금 폭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높은 수준의 복지제도는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무상급식은 공짜가 아니다. 세금을 더 내야 함을 전제한다. 문제는 누가 그 세금을 내느냐다. 그래서 세금 폭탄론 뒤에 숨은 불편한 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한국은 고소득층부터 저소득층까지 조세 부담률, 국민 부담률 수준이 낮은 국가다. 적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그렇다. 세금도 사회보험료도 선진복지국가 국민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낸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내지 않고 살았는데 갑자기 더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세금폭탄이 맞는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선진복지국가에서의 삶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부러워하지만 말고 우리도 그렇게 살려면 영리민영보험료를 줄이고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국민연금보험료 부담을 더 해야 한다.

둘째, 세금 폭탄을 맞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라는 점이다. 세금 폭탄을 맞을 정도로 산다면 오히려 개발정책으로 내 땅 값, 아파트 값을 올려준 국가와 사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금을 낼 필요가 있다. 치열하게 직장생활 했지만 50도 안 되는 나이에 밀려나와 치킨집도 해보고 분식집도 열어가면서 노후에 살 만한 조그만 아파트 지켜내고 자식들 대학 등록금 대야 하는 이 땅의 다수 대중에게 세금 폭탄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세금 폭탄론이 사회적 파급력을 갖는 이유는 ‘가진 자’들의 탐욕과 이해관계이며 그것을 수구 언론이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덜 가진 자’들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투기와 재테크를 구별하기 어려운 과정에서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잘 살게 된’ 경험을 한 사람들은 경쟁 원리에 대한 지나친 믿음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일단 자신이 ‘공정한 경쟁’을 거쳐 부와 명예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실력보다 부모의 부와 지위에 의지해야 살기 좋은 미래를 보장받는 현실이 이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면 내 자식에게 물려줄 것은 있으니 다른 집 자식들 형편이야 상관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다수 대중은 ‘내 잘못으로 이렇게 살지’라는 의식교육을 받아왔다.

이렇게 무한경쟁, 내 재산 지키기에 몰두하는 사이 대한민국은 자살률과 저출산율에서 1등 국가가 됐다. 어쨌든 1등이라 좋은가? 복지제도는 무한경쟁, 승자독식에서 벗어난 연대 원리 위에서 발전한다. 우선 ‘가진 사람들’이 사회가 만들어준 자산의 일부를 다시 내놓아야 한다. ‘덜 가진 사람들’도 십시일반의 심정으로 정직하게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야 한다. 국가는 직장인의 유리지갑이 아니라 ‘가진 사람들’의 자산을 대상으로 증세해야 한다. 내가 낸 돈을 복지제도를 통해 돌려받는다는 신뢰를 국민으로부터 얻어야 한다. 경쟁과 함께 하는 연대로써 우리는 복지제도를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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