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강간, 심각한 가정폭력 범죄다
부부강간, 심각한 가정폭력 범죄다
  • 김엘림 /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한국젠더법학회 회장
  • 승인 2014.03.04 14:35
  • 수정 2014-03-10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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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부부강간죄에 관한 판례는 부부의 관계와 인권에 관한 사회적 인식과 여성들의 지위와 판사들의 성비 구성 등이 변화됨에 따라 점차 진보하고 있다.

다른 여자와 동거하고 있는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하고 이혼소송을 제기했다가 부부 간에 다시 새 출발하기로 약정해 고소와 소송을 취하한 처를 남편이 2일간 감금, 항거할 수 없게 한 후 성관계를 한 사건에 관해 1970년의 대법원 판례는 실질적으로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부부 간에는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는 부부는 법률상 성생활을 함께 해야 할 의무를 포함한 동거 의무를 가지며 부부 간에 강제적 성관계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은 곤란하고 법이 부부의 내밀한 성관계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인식이 있다.

부부강간죄를 인정한 최초의 판례는 40대 한국인 남편이 20대의 필리핀 출신의 처를 심하게 폭행하고 흉기로 위협해 강제로 성교 행위를 한 사건에 관한 2009년의 부산지방법원 판결이다. 이 판결은 강간죄의 보호 대상인 ‘부녀’에 혼인 중인 부녀를 제외시킬 근거가 없으며, 강간죄의 처벌을 통해 보호하려는 것은 성적 성실을 의미하는 여성의 ‘정조’가 아니라 인격권에 해당하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며 이 권리는 처도 가진다고 봤다. 또 부부 사이에 발생한 심각한 성적 폭력행위로 처의 자유로운 인격의 실현과 존엄성을 해치는 사태를 국가가 방치하는 것은 인간다운 생활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혼인과 가정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한 헌법과 정의 관념에 현저히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다.

2009년의 대법원 판결은 처가 협의이혼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한 다음 날 새벽, 남편이 처를 성관계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머리채를 잡고 부엌칼로 위협해 반항하지 못하게 한 상태에서 강간한 사건에 대해 혼인관계가 존속하는 상태에서는 강간죄가 성립하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당사자 사이에 혼인 관계가 파탄됐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혼인 관계를 지속할 의사가 없고 이혼 의사의 합치가 있어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법률상의 배우자인 처에 대한 강간죄는 성립된다고 했다. 그후 2011년 8월 4일 가정폭력특별법이 개정돼 가정폭력범죄에 강간과 추행의 죄를 포함해 배우자에 대한 성적 폭력도 국가가 가정폭력범죄로 처벌하고 방지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지난해 5월 대법원은 “부부 사이에서도 양성의 평등과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인식이 국민의 보편적 법의식으로 자리잡게 된 오늘날에는, 혼인 관계가 파탄에 이른 경우는 물론 혼인 관계가 실질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도 남편의 성폭력이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렀다면, 국가가 이에 개입하여 더 이상의 피해를 방지하고 건강한 부부 관계가 회복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국가형벌권의 행사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다만 이 판결은 “남편의 아내에 대한 폭행 또는 협박이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른 것인지 여부는, 부부 사이의 성생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가정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에 이른 것인지 여부,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혼인생활의 형태와 부부의 평소 성행,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상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덧붙여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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