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같은 정원 만들고 싶다”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려온 황지해(38) 정원디자이너는 미지상 수상 소식에 거듭 반가움을 표시했다. 미개척 분야에서 길을 만들어온 사람은 외롭기 마련이다. 황 작가는 “얼마 전 열린 ‘제4회 한류박람회(KBEE) 런던’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온다는 말을 듣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결국 영화 쪽으로 가시더라”며 “한국은 스포츠, 영화 같은 동적 문화에 편중돼 있다. 많이 외로울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며 살았다.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고 다이내믹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여성신문이 주는 여성지도자상이라 더 뿌듯하고 인정받은 느낌”이라고 했다.

황 작가는 2011년 180년 역사의 영국 첼시플라워쇼에서 ‘해우소’로 최고상과 금메달, 2012년 ‘고요한 시간: DMZ 금지된 정원’으로 회장상과 금메달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갯지렁이 다니는 길’ ‘뻘 공연장’을 조성했고, ‘제4회 KBEE 런던’ 행사에 초청돼 ‘0.001_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를 선보였다. 그가 프랑스 롱스시에 조성한 한국정원 ‘뻘: 어머니의 손바느질’은 프랑스에 영구 보존되는 성과를 거뒀다.

황 작가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계절이 바뀌면 옷을 사 입듯 유럽인들은 정원을 바꿔 가든파티를 연다. 일찍 퇴근해서 정원을 가꾸는 게 생활화됐고 정원에서 사교문화가 이뤄지더라”고 했다. “한국은 성장과 속도를 중시하다 보니 정원문화가 구석진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원래 우리 어머니들이 정원디자이너였죠. 한국에 내재된 생활문화가 곧 정원이었어요. 어머니들이 일궈온 텃밭을 떠올려 보세요. 우리나라는 옛날에 정원이 필요 없었어요. 자연의 풍요로움 속에서 살다보니 결핍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콘크리트 숲이 되면서 녹색에 대한 갈증이 생겨났고 정원문화에 관심이 높아진 거죠.”

황 작가는 목포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99년 환경미술 그룹 ‘뮴’을 결성한 후 250점 이상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환경미술가로 본격적으로 활동하다 정원디자인으로 방향을 틀었다. 요즘은 유럽을 오가며 정원 창작에 여념이 없다.

“정원을 한 바퀴 돌고나면 책 한 권 읽은 듯한,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힐링도 되고요. 정원이 참 재밌는 게, 밥그릇이 크다보니 많은 걸 담을 수 있어요. 정원을 통해 책을 쓰고 싶어요. 한 권의 고전 같은 정원을 만들고 싶어요.”

황 작가는 특히 “고층 빌딩이나 아파트숲에 갇혀 조망권이 강제적으로 파괴당하고 있다”며 “도심 속 자투리땅에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 5층마다 한 개 층에는 새와 나비가 날아들고 벌도 오는 실내 정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