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그곳에 가면 행복이 있다

1년 동안 아이들 키우느라 애쓴 엄마들끼리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 토닥토닥 위로를 나눴다. 내년에도 우리 잘 지내보자. 지금처럼 뚝심 갖고, 흔들리지 말고, 아이들 괴롭히지 않는 착한 엄마로 살자. 무엇보다 모두 행복해지자는 메시지가 핑퐁핑퐁 오고 갔다. 덕담을 나누며 이런 인연을 만들어준 아이에게 감사했다. 네가 있어 내가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됐구나. 네 덕분에 나는 다시 생을 시작한 것처럼 살았구나. 이미 지나간 것들이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와 한 번 더 살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됐구나. 정말 고맙다. 아이에게 간단한 신년 카드를 쓰면서 오스트리아 빈이 떠올랐다.

임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꼭 2주 후였다. 빈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은 모차르트 때문이었다. 마침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었고, 빈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모차르트라면 위트 있는 위로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애당초 아이는 별 관심이 없던 우리 부부였다. 서로를 울타리 삼아 재미있는 인생을 살아보자고 한 결혼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때 되면 아이 낳고, 기르느라 힘 빼면서 불쌍하게 늙어가지 말자. 그것은 우리 사이의 보이지 않는 약속이었다. 왜 꼭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 친구가 아이를 낳았다. 친척이 아이를 낳았다. 동료가 아이를 낳았고, 선후배가 아이를 낳았다. 하다못해 빅토리아 베컴도 아이를 줄줄이 낳고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나만 안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 모두 가지고 있는 롤러스케이트가 갖고 싶어 안달하던 그런 마음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 엄마를 졸라 산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뽐냈던 것처럼 금방,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 우리도 이제 낳아볼까? 하지만 새 신발 사듯 모든 것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을까.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나는 당장 불행해졌다. 모든 초점이 임신에 맞춰졌다. 점점 불안했다. 이틀을 꼬박 울고, 회사에 휴가를 신청했다. 그리고 짐을 꾸렸다. 여행 계획을 세워 도망치듯 빈으로 떠났다.

빈은 과연 음악의 도시였다. 골목마다 거리마다 카페마다 음악이 있었다. 흐르지 않아도 음악에 지난 역사가 있었다. 힘들게 예매해 감상하는 모차르트의 실내악은 꿈보다 더 달콤했고, 거리에 서서 듣던 이름 없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는 말없이 감미로웠다. 온 도시가 음악으로 가득했던 빈에서 고민은 쓰레기통에나 던져 버려야 할 것이었다. 오직 인간의 생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어쨌든 나는 마지막으로 오스트리아 중앙묘지에서 베토벤과 브람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나는 석 달 전의 나로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나의 분신을 품을 수 있었다. 지금도 생각한다. 만약 그때 음악이 없었다면 다시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잘 자라 얼마 전 취학통지서를 받고 무사히 1년을 마쳤다. 그러는 동안 우왕좌왕 허둥지둥 실수연발 나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 같고, 내가 아닌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야 하는 삶은 녹록지 않았다. 그러나 육아 스트레스 이상의 행복이 나를 찾아왔다는 것을 인정한다. 아이를 키우며 미지근하던 생은 다시 활활 타올랐고, 뜨거워진 삶은 살아나갈 힘이 돼주고 있다. 행복을 찾고 싶다면 빈으로, 음악의 도시 빈으로 가보길 권한다. 가는 길이 너무 멀어 요원하다면 삶 속으로 음악을 가져오길 바란다. 빈에서 나고 자란 음악은 우리가 낳아 키운 아이들처럼 더없이 사랑스러우므로.

빈 여행을 계획한다면~

대부분 동유럽 여행에 하루이틀 정도로 빈을 포함시키는데, 빈만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문화 대국인 오스트리아의 오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하이든, 말러 등 클래식 음악가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고, 클림트, 실레 등의 예술가와 뮤지컬 ‘엘리자베트’의 실제 인물로 유명한 황후 시시의 삶도 돌아볼 수 있다. 여행의 테마를 한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돌아보면 좋다.

첫째, 역사 돌아보기.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이었으며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에 필적할 만한 웅장한 아름다움을 갖춘 쇤브룬궁, 클림트의 키스가 걸려 있는 벨베데레궁, 빈 자연사박물관과 미술사박물관 등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짧을 정도.

둘째, 예술 돌아보기. 베토벤의 파스콸라티하우스, 모차르트하우스, 하이든기념관,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올린 성슈테판성당, 세계적 음악가들이 잠들어 있는 중앙묘지, 세계적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훈데르트바서하우스, 말러가 음악감독으로 있었던 국립오페라하우스 등. 시간이 된다면 본토 음악가들이 선사하는 공연 한 편을 꼭 관람할 것.

셋째, 공간 돌아보기. 왕궁 마구간을 개조해 만든 복합 문화공간 뮤지엄쿼터는 아이들과 함께 돌아보기 좋은 장소. 레오폴드미술관, 쿤스트할레 빈, 현대미술관 무목, 어린이미술관 줌이 한 공간에 있다. 특히 줌 어린이미술관에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 클래스가 있어 여행에 지친 아이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준다.

어른들을 위한 공간으로 빈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카페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문화활동 공간이었던 카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카페로 가자는 시를 쓰고 자신의 주소를 카페로 했던 알덴베르크를 비롯한 문인들의 카페였던 첸트랄, 초콜릿 케이크 자허도르테가 탄생한 카페 자허, 황실 커피를 담당하던 카페 데멜까지.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아스라이 옛 사람들을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 외, 가볼 만한 곳

마스터 셰프로 유명한 김소희 셰프의 레스토랑 킴코흐트, 슈테판성당 뒷골목에 있는 전통 오스트리아 음식인 비너슈니첼로 유명한 100년이 넘은 레스토랑 피글뮐러, 유명한 특산품인 초콜릿 모차르트 쿠겔을 한 봉지 사서 먹으며 걷는 명품 숍이 즐비한 게른트너 거리, 쇼핑의 중심지인 마리아힐퍼 거리까지. 보고 듣고 느끼고 즐기며 빈에서 진짜 행복을 찾길 바란다.

당장 떠나기 어렵다면 이런 방법을~

정신과 의사이자, 우리나라 유일의 클래식 음반 매장 풍월당의 주인인 박종호씨가 쓴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와 이광주 교수의 ‘유럽 카페 산책’ 추천! 책을 읽는 것만으로 빈에 다녀온 듯 황홀해질 것이다.

연재를 마치며

연재를 위해 엄마들과 여행지를 찾고 그곳으로 떠난 시간은, 바람처럼 늘 상쾌했습니다. 어디론가 떠난 덕분에 모여 앉아 아이 성적, 사교육 이야기보다 하늘과 꽃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요. 혹시 엄마라면, 자신의 인생도 버거운데 한 생명을 낳아 기르느라 어쩔 줄 모르는 당신이라면 주저 말고 잠깐이라도 훌쩍 떠나보길 바랍니다. 길 위에서 의외의 답을 얻을지도 모르니까요. 모자란 글,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