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논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뉴스의 단골 메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더니, 내가 하면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인재의 영입”이요, 네가 하면 “코드 인사”란다. 이번 정부의 ‘MB 사람 물갈이’ 폭풍도 못잖게 사납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이미 민영화된 지 오래인 포스코나 KT의 CEO가 임기를 남겨둔 채 얼마 전 물러났거니와, 시중에서는 금융권의 ‘내 사람 심기’도 임박했다고 보면서 모두들 뻔한 시나리오 아니겠냐고 수군대는 모양이다.

오랜 식민 지배 속에서 한국은 민간 기업가나 전문 경영인이 자랄 수 없었으므로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제는 민간기업의 덩치가 커지고 목소리도 커졌지만 여전히 한국은 정치권과 관료의 입김이 세다. 또 월급은 많이 주는지 몰라도 안정된 양질의 민간부문 직장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공공부문은 흔히 ‘신이 내린 직장’이라거나 ‘신이 감춰둔 직장’이라는 질시와 비아냥거림을 받는다. 한편에서는 공공부문의 규율 이완과 방만 경영을 빗대어 공무원의 모토는 “오늘 일도 내일 하자”라는 좀 지나친 우스개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기실 한국 공공부문의 효율성은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다. 이런저런 국제 비교에서 한국의 공공부문은 상대적으로 양적 규모는 작지만 비교적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정경유착과 부패의 골이 깊어서 특히 공무원의 경우 유착과 부패를 막기 위해 1~2년, 심지어 6개월을 단위로 순환보직 인사를 실시해왔다. 해당 직책을 파악할 만하면 자리를 옮기게 되고, 직무의 전문성은 산하 기관을 만들어 여기에 의존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공공부문 기관장에는 해당 부서의 퇴임 관료나 정치권 인사가 옮겨오기 십상이었다. 노조를 비롯해 해당 공공기관의 구성원 역시 정권과 코드가 맞는 기관장이 와서 외풍을 막아주고 조직의 위상을 높여주기를 기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공공부문이나 민간의 지배 구조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경영의 효율성이나 투명성에서 한국의 경영 인프라는 아직 부실한 점이 많다. 아직은 전문 경영인 풀(pool)이 취약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현실이 이럴진대 옥석을 가리지 않는 상투적인 낙하산 논란은 자칫 국민을 지치게 해서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를 키울 수도 있다. 정치냉소주의나 정치무용론은 정치를 통해 기존 질서를 바꾸고자 하는 개혁 세력을 무력화시켜 본의든 아니든 기득권 집단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던가.

어차피 정치적 셈법으로 떠드는 낙한산 공방이야 우리의 정치 수준이 높아지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으리라. 그래도 임원 선임 절차와 경영 감시 장치를 잘 갖춰 옥석을 가린다면 좀 낫지 않을까. 이들 절차와 장치는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다. 우선 공공부문의 종업원, 관련 소비자단체, 공익단체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을 더 폭넓게 참여시켜서 이들의 활약을 활용하면 어떨까. 다양한 이견을 조율하는 문화 인프라도 키워가고, 이권이나 챙기고 조직을 망치는 낙하산을 걸러내어, 진짜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인재’가 능력을 발휘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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