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동체를 두고 ‘한가한 이야기’로 치부하는 분들이 있다. 동네 골목에서 마을 만들기를 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나? 바뀐다 해도 언제 어느 세월에 바뀌겠나? 뭐 이런 걱정에서 나온 이야기다.

결국 근본적인 제도를 바꾸지 않은 한, 일부 몇몇 사람들, 그것도 여유 있고 형편 되는 사람들끼리의 호사 정도로 폄하하기도 한다. 맞다. 마을에서 동네 사람들이 동네 어르신 몇 분 함께 돌본다고 해서, 한국 사회의 독거노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동네에서 마음 맞는 엄마들이 제 새끼들 품앗이로 함께 돌본다고, 가족이 못 챙기는 아이들의 방과 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마을 공동체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더 근본적 장애가 있다. 주거와 노동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마을 공동체는 불가능한 시도라고 한다. 그렇다. 2년마다 이사 갈 걱정을 해야 한다면 마을 하기 어렵다. 곧 이사 가야 하는데 아래층 이웃과 친해지는 것은 참 번거롭고 심란한 일이다. 당장 내년 봄에 전세 만기가 돌아오고, 눌러앉아 살려면 필시 보증금 몇 백, 몇 천은 올려줘야 할 텐데 난감하다. 마을이란, 함께 오래 살아야 오다가다 마주치면서 서서히 안면도 익히고, 애들 이야기 나누고, 신랑 뒷담화하면서 위로받으며 친밀한 관계가 되고, 그러다가 궁리 끝에 뭐라도 함께 저지르듯 시도해보면서 만들어지는 이웃들의 관계 아니던가.

그 다음으로 큰 장애는 노동이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야 집에 들어와, 쓰러지듯 잠시 지친 육신 뉘었다가 새벽이면 다시 일으켜 일터에 나가는데, 무슨 이웃이고 마을일까? 그야말로 한가한 이야기고 낭만적인 소리다. 외국은 오후 네댓 시만 되면 퇴근하고, 술집도 늦도록 문 연 곳 없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클럽에서 자원봉사하고, 취미활동을 한다고 한다. 영국의 아마추어 축구클럽의 세분된 리그의 팀들의 코치와 심판들이 다 지역 주민들이 취미로, 봉사로 한다고 하지 않나. 새벽부터 밤늦도록 죽어라 일하지 않아도 그냥그냥 새끼들 키우며 먹고 살고, 오후에는 동네에서 어슬렁대다 마주치는 이웃과 맥주 한잔 하고, 아이들과 공도 차고 가족끼리 놀러도 가고….

지난해 어떤 정치인이 ‘저녁이 있는 삶’이라 하지 않았던가? 죽어라 일만 하지 않아야 가능한 삶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과 일자리를 나누는 효과도 생겨 실업도 많이 낮추고, 그야말로 일거양득일 터인데.

그렇다. 마을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려는 마을 공동체, 마을만들기는, ‘아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 저렇게 살아도 좋구나’ 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다른 상상, 다른 시도가 그럴듯해 보이고, 나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혁신이 아닐까? 그렇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한둘 늘다보면,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설득력과 추진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몇몇 전문가들의 머릿속 구상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나 정치인들의 구호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이 실제로 그렇게 살아내는 것일 때, 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 만들기가 아니라, 마을살이다. 전문가들의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시민들의 생활 그 자체로서 마을살이인 것이다. 생활세계에서 시민이 직접 대안적인 생활을 살아가고, 스스로 행복하고 만족감을 가질 때, 시민이 직접 나서서 정치건 정책이건 제도화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정치인에 일임하지 말고, 시민단체의 대변(advocacy)에 내맡기지 말고 ‘아쉬운 사람이 우물판다’는 옛말처럼, 필요하고 절실한 사람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야 시민단체의 대변도 먹히고, 정치인도 위임받은 권력을 허투루 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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