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만 방문 중 한복 패션쇼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 (사진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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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만 방문 중 한복 패션쇼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 (사진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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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신문 가판대를 힐끗 봤을 땐 무슨 스포츠 신문인 줄 알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총천연색 패션 사진을 3장이나 1면에 대문짝만 하게 걸어 놓은 신문 말이다. 알고 보니 나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유력 종합일간지였다. 무슨 내용인가 싶어 신문을 펼쳐 보니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러 페이지에 걸친 기사 곳곳에 대통령의 패션 사진만 무려 10장이 깔려 있었다. 그 어떤 세계적 톱모델이 종합일간지에 자신의 패션 사진을 10장씩이나 싣는 영예를 누린 적이 있었던가? 실로 경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사실 국내 언론이 박근혜 대통령의 패션에 관심을 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통령이 참석한 주요 행사나 해외 순방 때면 어김없이 대통령의 패션을 비중 있는 기사로 다뤘다. 대통령의 치마와 바지가 각각 어떻게 다른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해석하고, 대통령이 입은 옷 색깔이 갖는 정치적 상징에 대한 심오한 의미 부여를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해외 순방의 구체적 성과보다 정상회담 석상에서 입은 대통령의 의상이 언론으로부터 더 많은 조명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패션 전문가도 아닌 시사평론가들이 나와서 심각한 표정으로 대통령의 패션을 논하는 종편 뉴스는 거의 코미디 수준이다. 남성 대통령 시절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여성 대통령 시대의 새로운 현상이라 하겠다.

여성 대통령의 패션에 대한 언론의 과도한 관심은 오랜 남성 중심주의적 보도 행태의 잔존물이다. 여성 취재 대상을 그가 가진 능력이나 사회적 역할보다 외모나 옷차림 같은 흥밋거리에 초점을 맞춰 보도해온 관행이 이제 여성 대통령에게까지 옮겨온 것이다. 물론 이는 국내 언론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서구에서도 유력한 여성 정치인의 패션은 늘 언론의 관심거리다. 하지만 서구 언론에서 여성 정치인의 패션은 기껏해야 보조 기사 정도일 뿐 메인 뉴스로 다뤄지는 일은 없다. 여성 정치인의 패션이 정책이나 메시지보다 더 비중 있는 뉴스로 취급되는 것은 국내 언론의 천박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통령 입장에서 언론이 자신의 국정 운영보다 패션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짜증이 날 법도 한 일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언론의 보도 태도를 내심 즐기는 듯 보인다. ‘옷차림도 전략이다’라는 오래된 광고 카피처럼 대통령 스스로가 패션을 이미지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 정치에서 이미지 정치는 많은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단이다. 특히 여성 정치인이라면 패션을 통한 이미지 정치가 남성 정치인에 비해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경쟁 요인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이 패션 전략을 구사한다고 해서 그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미지 정치로만 지나치게 일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이나 당면 현안에 대한 입장이 공식 발언이나 구체적 정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옷차림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추론하고 해석해서 미루어 짐작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지금 대통령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패션(fashion)을 통한 이미지 정치가 아니라 국정 현안에 대한 열정(passion)이다. 또 여야 대표와의 3자회담에서 야당 대표의 드레스 코드까지 신경 쓰는 오지랖 넓은 패션(fashion) 감각보다 듣기 싫은 소리도 겸허히 경청하고 잘못한 일은 깔끔하게 사과할 줄 아는 소통에 대한 열정(passion)이 필요하다.

취임 초기 박근혜 대통령이 시장을 방문할 때 들었던 손지갑이 인기검색어 1위에 오르며 순식간에 완판을 기록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국민에게 절실한 지도자는 패션(fashion)을 따라하고 싶은 지도자가 아니라 열정(passion)을 따라하고 싶은 지도자임을 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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