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불우 청소년 위해 교육센터 세워
자활 레스토랑 성공, 청년일가상 수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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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호주 국적의 ‘라이따이한’ 문용철(42·지미 팸·사진) KOTO 대표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문 대표는 지난 7일 (재)일가재단(이사장 손봉호)이 가나안농군학교 창설자 고 일가 김영기 선생의 복민주의 사상을 아시아에 전파하기 위해 제정한 일가상의 청년일가상을 수상했다. 바로 다음 날엔 베트남 국빈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열린 한-베트남 경제협력 만찬 간담회에서 그의 활동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호주에서 성장한 문 대표는 1996년 가이드로 우연히 베트남을 방문, 길거리에서 헤매는 청소년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사재를 털어 3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청소년 교육센터인 KOTO를 설립했다. 불우 청소년들의 자활을 위해 교육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청소년들이 일자리를 얻고 자립해 삶을 변혁하는 데 기여해온 KOTO는 베트남의 첫 사회적기업이다. 이후 생겨난 베트남 현지 400여 개의 사회적기업의 롤 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

‘KOTO’는 ‘Know One Teach One’이란 모토의 줄임말로, “아는 것은 나누어야 한다”는 그의 경영철학을 대변한다. 관광객에게 인기 높은 퓨전 레스토랑 KOTO를 하노이와 호찌민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기내식을 납품하고 온라인상에서 베이킹·쿠킹 교실을 운영하는 등 이제까지 배출한 요리사, 바텐더, 호텔리어 등 500여 수료생의 인적자원을 기반으로 활발히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 내에 그치지 않고 인근 미얀마에도 레스토랑과 트레이닝센터를 개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유럽으로 인신매매 된 소녀들 위해

고국 정착 프로젝트 추진할 것”

 

7일 일가상 시상식 직후 기자와 만난 그는 여기에 더해 “동유럽에 인신매매로 팔려나간 베트남 소녀들을 다시 고국으로 데려와 정착시키는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40대 초반의 나이에도 미소만큼은 티 없는 이 미혼의 사업가에겐 ‘동생’이라 지칭하는 KOTO의 훈련생들이 곧 가족이다.

 

-당신의 사회적기업이 지난 14년간 베트남 사회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무엇이라 보는가.

“‘KOTO’는 단순한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아니다. 어려운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는 학교다. 때문에 사회적 여파가 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것은 모토 ‘Know One Teach One’이 시사하듯 지식을 혼자만 소유하는 게 아니라 남과 공유하고, 거기서 임파워먼트(empowerment)가 생긴다는 것이다. 학생들 스스로도 배운 것을 남한테 가르치면서 큰 만족감과 자신감을 얻는다. 졸업생의 20% 이상이 다시 돌아와 KOTO에 헌신해 기업을 키워나가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남들이 KOTO의 성공 비결을 묻곤 하는데, 그 대답 역시 우리 특유의 임파워먼트에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나는 아이들은 궁핍하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인데, 이들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를 어떻게 잡는지를 집중 가르친다. 2년 교육과정은 기술 개발과 훈련뿐만 아니라 건강한 생활, 물질 관리, 분노 조절, 성교육, 의사소통, 응급처치, 관계 맺기 등 인격 개발에도 초점이 맞춰져 있다.”

-1996년 우연히 하노이를 방문하고 삶이 180도 바뀌었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 모험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무엇이 원동력이 됐는가.

“필요가 있으면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또 씨앗을 일단 뿌렸으면 그것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 도리다. 때문에 우리 동생들이 성공할 때까지 지켜보는 게 책무라고 생각했다. 직접적 원동력은 바로 동생들이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내가 더 많은 것을 받는다.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때론 돈도 까먹을 때도 있지만 굶을 지경이 될 정도로 곤궁해져 길거리에 떨어진 빵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그들은 늘 내 곁을 지켰다. 초기엔 매일 이 일을 그만두고 싶었으나 동생들의 미소를 보며 견뎌냈다. 그들의 미소 속에 숨어 있는 작은 감사의 표시를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삶의 목적은 바로 이 일이고, 이 일을 죽을 때까지 하겠다고.

그 다음 원동력은 엄마다. 어머니 자신도 길거리에 버려진 채로 자랐지만 엄청난 의지와 열정으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그의 베트남인 엄마는 호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는 3남3녀 중 막내다). 어떻게 보면 이제까지 아이들에게 나와 같은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은 일념으로 분투해온 셈이다.”

 

대사관 앞에서 엽서 팔던 17세 소녀

유명 레스토랑 사장으로 성공하기도

 

KOTO에는 세계 유명 인사들의 격려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뉴질랜드 고위 관료 부부(왼쪽에서 둘째)가 KOTO 하노이 레스토랑을 방문해 직원 훈련생들과 함께했다.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 gabapentin withdrawal message board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bystolic coupon 2013prescription drug discount cards cialis prescription coupon cialis trial coup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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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O

-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작업이었다. 이 일을 구상한 96년 당시 나는 베트남어에도 문화에도 무지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라 생각했다. 길거리에서 데려오려 하면 어떤 아이들은 자신을 중국으로 팔아넘기지 않나 의심할 정도였으니까. 이후 단지 아이들 곁에 머물면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사 주는 일만 했다. 3년이 지난 99년이 되자 아이들이 ‘우린 더 이상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선물 받듯) 당신에게 얻어먹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사회적기업의 발단이 됐다. 어쨌든 KOTO 초기부터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숨김 없이 얘기하고, 프로그램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고자 애써왔다.

지금도 나는 우리 아이들, 즉 동생들의 생활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웃음) 일전에 KBS ‘글로벌 성공시대’ 팀이 촬영 왔을 때 PD가 나를 시험하듯 이 아이 저 아이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그들의 이름은 물론 세세한 상황까지 다 알고 있어 문제가 없었다. 믿음보다 우선하는 것은 사랑과 지속적인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동생들, 그들의 성공 사례가 궁금하다.

“이제까지 500명이 KOTO를 거쳐 갔고, 현재 200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소중한 얘깃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첫 번째 제자들의 성공을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그중 한 제자는 빈촌에서 알코올과 도박에 중독된 아버지에게 늘 매 맞던 아이였다. 이 아버지가 어느 날 집에 감금하고 불을 질러 아이와 엄마를 죽이려 했는데,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으나 그 충격으로 엄마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무언가를 훔쳐오곤 해 그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어머니를 강물에 던져버리곤 했다고 한다. 우리가 아이를 발견했을 당시 19세였는데, 영양실조로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KOTO의 교육과정을 거쳐 두바이의 유수 레스토랑에 취직해 가정을 꾸렸고, 현재는 베트남의 유명 호텔 체인에서 일하고 있다. 또 한 아이는 부모의 이혼으로 방치돼 호주 대사관 앞에서 엽서를 팔던 17세 소녀다. 역시 우리 교육과정을 거쳐 취직한 호텔에서 똘똘하게 일을 잘해 내가 사비를 털어 호주 대학에 유학을 보냈다. 졸업 후 KOTO가 공동 투자하고 운영하는 음식점의 사장이 됐는데, 호주 대사의 단골 음식점이기도 하다. 호주 대사가 그 집 음식을 격찬할 때마다 흐뭇하다.”

-KOTO 입학 경쟁률이 치열한 것으로 안다.

“경쟁률은 7 대 1 정도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지원자를 뽑느냐는 거다. 기본적으론 스스로 지원서류를 작성할 정도로 문맹이 아니어야 한다. 서류 접수 후엔 관계자들이 사는 곳을 직접 방문해 지원서에 기재한 사항이 모두 사실인지 확인한다. 가장 중요한 단계는 인터뷰다. 과연 이 지원자가 우리의 교육을 받은 후 우리의 모토대로 살 것인가, 배려심 있는 아이인가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조화·적응 능력을 본다. 이런 과정을 거쳐 뽑힌 아이들인지라 자립률이 거의 백 퍼센트에 이르고, 재능 사회환원율도 90% 이상이다.

우린 소수 정예 인원을 뽑는다. 한정된 자원(1명당 교육비용이 1만 달러 정도)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투자하려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더구나 학생들이 너무 많아지면 아이들이 숫자에 불과해질까봐 걱정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맞춤 교육으로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 8개 반에 30명 이하로 교육생을 모집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성평등 원칙 아래 남녀 비율을 50 대 50으로 학생들을 뽑고 있다는 사실이다.”

 

7 대 1의 치열한 입학 경쟁률

‘배려’와 ‘나눔’ 마인드가 제1 조건

 

-KOTO엔 세계적 인사들이 많이 다녀갔다. 특히 기억에 남는 방문이 있다면.

“아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호주와 뉴질랜드 총리, 덴마크 여왕 등 다양한 명사들이 다녀갔지만 그래도 2000년 11월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잊을 수 없다. 당시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두 달도 채 안 돼 엉성하고 어수선한 상태였고, 미숙한 점도 눈에 많이 띄었을 텐데도 클린턴 대통령은 전혀 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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