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서울시청 감독으로 부임하기 직전까지 26년 동안 선수로 뛰었다. 코트 안에서 살아온 내 인생 1막은 나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최초’라는 타이틀도 꽤 되고, 특히 한 번 밟기도 어렵다는 올림픽 무대를 3번이나 경험했다.
인생 1막에서의 성공이 인생 2막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서른 중반을 향해 갈 즈음, 핸드볼인으로서 어떻게 인생 2막을 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그동안 감독 겸 선수를 병행하면서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과 힘든 일을 극복한 만큼, 지도자 감독직만 겸하면서 나를 위해 조금은 즐기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시간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하고, 취미로 골프를 배우며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가시간을 보내려 하는데 서울시청 감독직 제의가 왔다.
애써 인생 2막을 새롭게 준비하던 중이라 고민이 됐지만, 스스로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즈음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다. 세민이 교육과 연봉 등의 모든 조건은 일본이 더 좋았지만 결혼과 출산으로 힘든 것을 극복하고 나니 사람이 그립고 가족이 보고 싶어 한국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2008년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반겨주는 사람 절반, 텃세 부리는 사람 절반이었다. 때로는 ‘내가 이곳에 왜 왔나?’ 싶기도 했다. 하루는 가족을 다 불러 놓고 대성통곡을 했다. 당시 구기종목 최초로 여성 감독 타이틀을 거머쥐었다고 주목을 받았지만, 핸드볼계에서는 어렵게 난 자리를 국내 경험이 전혀 없는 임오경이 꿰찼다는 말이 떠돌았다. 일본에서처럼 실력으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이 꽉 깨물고 훈련에 매진했다. 일본에서 꿈꿨던 골프는 결국 하지 못했다.
골프를 포기한 대신 한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는 분야도 있었다. 방송과 스포츠행정 분야였다. 물론 나의 주요 직책은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 감독이다.
방송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올림픽 때만 반짝 인기를 얻는 핸드볼을 대중에게 알릴 기회이기 때문이다. 대한핸드볼협회 홍보이사를 맡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효율적인 홍보 방법이기도 했다. 지금도 SBS 해설위원, 종종 KBS 아침마당이나 종편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선수위원을 시작으로 체육진흥공단 비상임이사, 한국여성스포츠회 이사, 국가대표선수회 여성위원장을 맡으며 스포츠 행정가로서의 삶도 시작했다.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개최한 ‘여성 스포츠인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여성 스포츠계의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체육학 박사 공부는 인생 2막의 큰 줄기다. 어릴 때부터 지적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늘 석·박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한국 핸드볼 역대 메달 획득 지도자 유형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하는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아이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도 하고 있다. 주말 활동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갈 때마다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따져보면 나는 인생 2막에서도 핸드볼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의 궁극적인 목표는 체육 선진화와 핸드볼 대중화다. 현재로선 인생 2막을 살아가는 중이기 때문에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평가할 수 없지만,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다양한 방면에서 힘을 빼는 게 아니냐’는 말을 하지만, 스포츠는 말이 우선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는 것인 만큼 나는 오히려 바쁘게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