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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유엔은 “어떤 조직에서 소수 집단이 그 조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려면 최소한 30-35%는 되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 여학생의 수는 60,70년대 전체 학생 수의 10%에 불과했

던 것이 96년에는 32.78%(1996년 교육통계연감)로 증가했다. 영향력

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수적인

증가에 질적인 면은 역부족이다.

국공립·사립대학의 여자 교원수는 전체 3만7천9백4명 중 12.3%인

4천6백82명. 특히 국립대학교인 서울대의 여자 교수 비율은 97년 10

월 현재 1천4백39명 중 90명이다. 전통적으로 여성 분야라고 인식되

어온 간호대, 가정대, 음대 등을 제외하면 여자 교수 비율은 4%를

넘지 않는다. 미국의 30%, 칠레 33%, 브라질 39%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교수임용을 담당하는 ㅅ대의 인문대학장은 “연구업적이나 실적에

따라 학과회의를 통해 선발하는데, 특별히 여성을 차별하지는 않는

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여자교수의 수가 적은 것은 여성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75년에 독일로 유학, 2년만에 박사학위를 따 신기록을 기록했던 이

은영 교수(한국외국어대학, 법학)는 “유학을 마치고 모교인 서울대

에 지원을 했을때 ‘법대에서 여자교수를 뽑을 것인가’하는 문제로

논의를 하더니 안된다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고, 원서를 내보지도 못

하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는 것이 좌절되었다. 다른 곳에도 원서를

넣어봤지만 법대 학생들이 여자 교수한테는 배우기 싫어한다는 이유

로 거절당했다”고 털어놨다. 또 조주현 교수(계명대, 여성학)는

“학문적인 업적이 심사기준이 아니다. 일단 여자는 제외한다. 임용

하려는 과에 여자가 한명이라도 있으면 여교수의 충원은 거의 불가

능하다”고 말했다. ㄱ대학의 한 여교수도 “임용되고 나니 ‘누구

의 빽으로 들어왔다더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아직까지 여자가 교

수로 임용되려면 실력보다 외적 배경의 힘을 얻었다는 불명예스런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고 밝혔다.

일단 임용이 되더라도 여자교수들은 동료로서 인정받기 보다는 이

방인 취급을 당한다. 서울 ㄱ대학의 한 여교수는 “남자교수들은 명

백한 실수를 하고서도 사과를 하지 않고, 남자교수에게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잘난 체한다’ ‘너무 나선다’같은 말을 공식적인 자

리에서도 가리지 않는다”고 전한다.

여자교수가 행정보직을 맡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국·공·사립대학

의 3백28개의 보직 중 여성은 8.2%인 27명에 불과하다. 여자대학의

총장이나 학장을 제외하면 4%에 불과하다. 실제로 국립대의 경우

총 53개 중 1명만이 보직에 올랐다.

여학생에 대한 남자교수들의 인식 수준 또한 ‘시집 잘가기 위해 대

학에 진학’한 정도에 머물러 있다. ㄱ대 94학번 김원정양은 “졸업

을 앞두고 사은회 자리에서 한 남자교수님이 ‘졸업을 하고 가정주

부가 되더라도 장바구니에 책 한권쯤 넣고 다닐 수 있는 교양있는

여성이 되길 바란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특별히 여학생을 위해 하

신 말씀이었는데, 결국 여학생은 취업과는 무관한 존재로 보고 계

셨던 거지요. 취업이 안돼 착잡한 마음이었는데 너무하다 싶은 생각

밖에는 안들었어요”라고 털어놨다. 또 여학생들은 면접시에도 학과

를 선택한 동기보다는 ‘시집이나 가지 뭐하러 대학에 왔느냐’는

질문을 곧잘 받는다.

입사원서를 배분하는 과정에서도 두드러진 성차별이 벌어진다. 이

은영 교수는 “입사원서가 오면 우선적으로 남학생들이 나눠갖는다.

여학생들은 지원해봤자 떨어질 게 렷求?받으나 안받으나 마찬가지

라는 게 그들의 논리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여학생들도 이를 당연

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라 지적했다. 남자 중심의 사회에 길들여

졌기 때문에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학생의 수는 증

가했지만 ‘들러리’로서의 지위에는 변동이 없는 것이다.

조혜정 교수(연대, 사회학)는 근저 를 통해 “현재 여학생들은 80년대 여학생에 비해

취업에 대한 자신감도 없고 그렇게 꿈에 부풀어 있지도 않다. 80년

대에 비해 취업의 문이 좁아진 것도 아니지만, 여학생들은 선배들을

보면서 대기업에 취직을 해봤자 신나게 일할 수 없는 상황임을 미리

알고 있고, 직장에서 여자를 여러 면에서 차별하고 있다는 것도 알

고 있다.

10년전 대부분 똑똑한 여대생들은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해보려는

결심이 대단했는데, 이젠 결혼을 통한 자아실현을 대안으로 삼고 있

다. 능력있고 돈 많이 버는 남편을 만나서 육아와 소비를 통한 자아

실현을 하는 것이 힘들게 일하고 구박받는 월급쟁이보다 낫다는 계

산을 하는 것”이라며 “대학이 여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보다 생산적인 주체로서 자아실痔? 해나가도록

여성 취업의 문제를 앞장서서 푸는 것”이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

는 방법이라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할당제’에 관한 부분이

다. 현재 여학생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는 곳은 특수 목적대학과 사

관학교 정도이다. 이것도 총정원의 10%내외로 못박고 있어 할당제

라기 보다는 ‘제한제’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교육대학과 서

울대 음·미대의 경우 각각 30%, 50%에 이르는 비율을 남자정원으

로 마련해 놓고 있다. 교육에 있어 성의 불균형이 초래할 심각성에

대비하여, 여학생의 편중현상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여학생의 진학기회를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남자가 다수인 분야는 놔두고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곳에서만 성

의 불균형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여학생은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여전히 찬밥신세다.

“나이도 어리고 여자인 네가 양보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요구

를 들었다. 석·박사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 지도교수의 조교로 연구

실에 상근하는 것은 직업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일인데도, 남학생은

군대를 갔다 온 선배이고 남자라는 이유로 여학생에게 조교 자리를

양보하게 한다”고 연세대 국문과 박사과정에 있는 ○씨는 말했다.

또 만약 부당하다고 이를 거절하면 남학생이 절대적으로 많은 대학

원 사회에서 따돌림 받거나 다른 불이익을 받게 되므로 울며 겨자먹

기로 여학생은 양보 아닌 양보를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거

기서 끝나지 않고 강사직도 남학생들이 나눠먹기 식으로 먼저 차지

하고 약간의 배려 차원에서 여자들에게 한두 자리를 배당한다는 것

이 ○씨의 지적이다.

한편 학생회에서도 여학생은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지 못한다. 20인

정도로 구성되는 총학생회 집행부에서 여학생은 한두명에 불과하다.

여학생 전담기구로 여학생회가 있기는 하지만 총학생회에 비해 규모

도 작을뿐 아니라 총학생회 산하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총학생회

는 남학생을 위한 기구인 듯한 인상을 준다. 여학생이 간부로 있는

경우도 간호대, 음대, 생활과학대 등 여성분야라고 인정되는 단과대

에 불과하다.

대학은 지성과 양심, 이성의 상징으로 성차별과 같은 불합리한 일

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고 “대학만큼 평등한 사회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복합적인 성차별 문화가 빚은 ‘우

조교 사건’,‘열악한 여대생 취업율’,‘낮은 여교수 임용율’등 대

학이 풀어야 할 과제는 너무나 많다.

여성지위 면에서 ‘미개국’ 수준을 못 면하는 사회 전반을 향해

지성을 갖춘 대학의 선각자적인 자세가 절실하다.

최이 부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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