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회학을 십 수년째 업으로 삼다보니 가끔은 괜한 전공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잇달아 등장하고 그 영향으로 사회가 급변을 거듭하다 보니, 불과 얼마 전 공부한 내용조차 금방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이야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늘 숨가쁘게 새로운 변화상을 따라다녀야 하지만 그렇게 습득한 내용을 써먹을 수 있는 유효기간은 점점 더 짧아지는 것이 정보사회학자가 처한 서글픈 숙명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정보사회학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특화된 전문가로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IT 분야가 날로 세분화돼 가면서 그것도 이젠 옛말이 됐다. 정보사회학 안에서도 새로운 트렌드를 미처 따라가지 못해 뒤처져버리는 세부 영역이 갈수록 늘고 있다. 정보사회학 물 좀 먹었다고 함부로 전문가 행세를 하려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니, 십 수년 연구 경력도 언제든 무색해질 수 있는 고약한 전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고민을 하다 요즘 TV 시사토론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하는 전문가란 분들의 활약상을 보면 경외감이 든다. 어제는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문제를 논하던 분이 오늘은 아베 정권의 우경화와 한·일 외교를 논하고, 내일은 또 개성공단을 둘러싼 남북 관계를 논한단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어떤 분은 이렇게 정치외교 현안을 두루 논하다가, 다른 채널에서는 돌연 일베 현상과 인터넷 문화를 분석하고, 또 다른 채널로 가서는 ‘설국열차’를 통해 본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세계까지 평론한다.

이쯤 되면 가히 미술, 건축, 과학, 의학 등 여러 분야에 능통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르네상스형 종합 지식인의 재현이며,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구현에 필요한 융합 인재의 전형이다. 게다가 불과 한두 시간 전에 발생한 현안도 그새 분석을 다 마치고 방송에 나와 30분 넘게 설명할 수 있는 순발력과 근면함은 다빈치조차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이며, 창조경제 모델에 반드시 추가해야 할 미래 인재의 덕목임에 틀림없다. 십 수년째 정보사회학이란 좁은 울타리 안에서만 허덕이면서도 점점 버거움을 느끼고 있는 아둔한 나로서는 그분들이 활보하고 다니는 영역의 광활함에 저절로 머리가 조아려질 노릇이다.

하지만 그분들이 보여주는 여러 능력 중 내가 가장 높이 사는 것은 다름 아닌 ‘용기’다. 그저 신문 기사 몇 개 요약하고 트위터에 남들이 올린 촌철살인의 글 몇 개 찾아 들고 와서는 전문가의 탁월한 식견인 양 포장해 시청자들 앞에서 떠들 수 있는 대단한 용기는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능력이다. 시종일관 지극히 주관적인 시사 만담 수준의 말장난만 내뱉으면서도 그것이 전문가의 분석이고 평론이라고 떳떳이 주장하는 용기 역시 온전한 정신세계를 갖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능력이다.

또 별다른 논리나 뚜렷한 근거도 없이 단지 자신의 감만으로 예언가처럼 당면 현안의 향후 전망을 예측하는 용기, 결국 자신의 예언이 틀렸는데도 반성과 해명 없이 다른 현안에 대해 또다시 예언을 남발하는 용기야말로 그들이 종합 지식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예전에 스포츠 중계 해설자들은 하나같이 선수들의 정신력과 투지만 목청껏 강조했다. 하지만 전략과 전술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각종 데이터에 입각해 경기를 해설하는 전문 해설자들이 등장하면서 예전 방식의 해설자들은 팬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말았다. 각종 TV 시사토론 프로그램에 주제를 가리지 않고 단골로 출연하는 망라적 종합지식인들로서는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하물며 예전에도 어제 축구 중계 해설하던 분이 오늘은 야구 중계 해설하는 황당한 일 따위는 없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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