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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한국여성의전화’ 창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편으로부터 구타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의 비율이 43%라는 것과 아내 구타가 ‘사적인 일’이라는 이유로 외면당하는 사회적 무지에 한국여성의전화가 해야 할 시대적 사명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여과 없이 피해여성들의 실상을 사회에 전했고 과연 이러한 여성인권의 사각지대가 계속 방치되어도 좋을 것인지 사회에 되물었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이 일었다. 그것은 우선 아내폭력이 양적 질적으로 매우 심각하다는 점과 ‘사적인 일’을 여성 인권의 문제로 보고 사회문제화 했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인권사각지대의 가정폭력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영역을 확장시켜 나갔지만 피해여성들을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법적 장치 마련은 요원하기만 하였다.

1989년 경찰이 한국여성의전화 상담소장을 연행해 구금하는 일이 일어났다. 죄명은 인신매매였다. 구타남편이 자신의 아내가 가출한 것을 두고 한국여성의전화가 빼돌려 인신매매하려한다며 경찰에 신고를 했던 것이었다. 관련법이 없었을 때이지만 경찰이 가해자의 말만 믿고 피해자를 돕는 기관의 상담소장을 가두고서 가해자의 요구대로 피해자의 거처를 알려주어야만 석방을 해주겠다고 하는 난센스가 벌어졌다.

우리는 즉각 여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사회적 여론 조성을 위한 행동에 박차를 가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서야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우리가 요구한 여성폭력 전체를 아우르는 법 대신 좁은 의미의 성폭력만을 다루는 법이 제정됨으로써 법 제정 운동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던 가정폭력관련법은 그로부터 다시 4년 뒤에나 입법화되었다.

여성폭력 문제에 대한 입법이 되면서 국가의 제도적인 면에서는 큰 산은 넘은 듯 보였지만 상담을 해오는 여성들의 상황이나 사회면을 장식하는 범죄는 예나 지금이나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최근에 몇 가지 반가운 소식이 있다. 부부 간 강간죄가 인정되었으며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제추행과 강간살인죄에 대해 공소시효가 폐지되고 성폭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꾸준히 제기되었던 친고제가 폐지된 일이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학교폭력이 정책적으로 각각 분리되어 다뤄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것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다른 현상일 뿐이다. 폭력가정의 자녀가 학교폭력의 가해학생으로 자란다는 점에서 학교폭력의 대책은 가정폭력에서 해답을 찾아야하고, 성폭력 가해자가 가정에서는 가정폭력 가해자가 된다는 사실에서 다양한 폭력 현상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 같은 폭력을 근절해야할 우선적 과제로 삼고 정책을 펴고 있는 이번 정부에서는 반드시 이 문제에 대한 가시적 성과가 있어야할 것이다. 각 부처에서 추진되고 있는 반폭력 운동을 통일된 관점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여성폭력의 문제를 이주여성, 장애인, 미혼모, 노인 등 다른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와 더불어 통합된 인권의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이 가능할 때 이 문제들의 해결에 한층 효율을 기할 것으로 생각하며, 7월 초 열리는 제18회 여성주간이 작은 계가기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국여성의전화 30주년 모임에서 앞으로의 희망을 위해 외친 구호는 “여성의 전화여 사망하라“였다.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고 반 여성폭력 운동이 필요 없는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 모두 반 폭력운동 대열에서 파이팅을 외쳐본다.

한우섭 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한국여성의전화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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