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전범을 추적하는 기자의 이야기였는데, 오래전 본 ‘오뎃사 화일’이라는 영화에서 사건을 쫓아다니는 주인공에게 이혼한 부인이 “기자란 남의 불행을 뜯어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조롱을 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가 하면 오래전 언론사 대선배는 “팩트(fact·사실)보다 더 래디컬(radical·급진적)한 것은 없다”는 자신의 직업관을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사실을 쫓는 기자라는 직업의 태생적 딜레마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

지난 1980년 해직됐지만 나는 한국일보 견습기자 33기다. 중학생 시절인 것 같다. 우연히 로버트 카파가 찍은 유명한 사진 ‘스페인 인민전선 병사의 죽음’을 보고 심장이 멎는 듯한 감동에 휩싸인 이후 줄곧 기자가 되리라 생각했었다. 처음 기자가 돼 수습 시절에, 지금은 돌아가신 당시의 편집국장 대선배가 기자란 기질적으로 ‘리얼리스트’라고 얘기했을 때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는 강한 동류의식을 느끼던 기억도 여전히 생생하다.

지금도 남이 잘 쓴 기사를 보면 배가 아플 때가 있다. ‘사촌이 땅을 사서’라기보다 향수가 아닐까 싶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향수. 또 해직의 ‘추억’ 탓인지 언론 종사자들이 수난을 겪을 때면 아무래도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지금은 대부분 ‘시사인’으로 새 둥지를 튼, 6년여 전 삼성 기사 삭제에 항의하던 시사저널 기자들의 파업 동영상을 보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최근 조세피난처 보도로 다시 한 번 진가를 발휘한 뉴스타파팀은 MBC, YTN 등의 해직자들이 아닌가.

이 와중에 친정 같은 한국일보에서 편집국 봉쇄라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주 한국일보 출신 여기자들이 점심을 먹다가 이 소식을 듣고 즉석에서 모금을 해 편집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로비에 모여 있다는 비상대책위원회 측에 전달했다. 그동안에도 경영진의 배임 의혹 등 이런저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외부에서 뭐라 하는 것이 사태 해결을 오히려 그르칠까 조심스러웠지만 편집국 봉쇄라니! 어쩌자고 여기까지!

어떤 이들은 한국일보를 가리켜 ‘견습기자 양성소’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다른 언론사에 비해 한결 자유롭고 개방적인 편집국 분위기 속에서 기자 훈련은 잘 시키는데, 대우를 잘 못해 다른 언론사로 다 내보낸다는 말일 터이다. 그래도 다른 언론사 소유 기업들의 지면 간섭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골적인 편집 탄압은 덜 하다고들 해왔다.

돌출 인사들의 망언 사태가 있어도, 작년 대선 이후 한국 언론들이 조금은 이른바 ‘진영논리’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나의 낙관주의가 사태를 너무 순진하게 관망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보수는 진보의 48%에, 진보는 보수의 52%에 놀라 각각 마케팅을 달리하는 것일까 싶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한국일보는 특히 지난 2년여 전부터 “자유로워서 날카로운” 지면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 글이 지면에 실릴 때쯤엔 한국일보 사태가 좋은 방향으로 해결돼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감정의 골이 깊어져 사태 해결이 더 어려워지지 않도록 대립하는 양측이 자중자애, ‘질서 있게 수습’해 주었으면 좋겠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던가, 한국 언론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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