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피해 노인 10명 중 7명은 여성
아프고 가난한 독거노인 ‘학대 위험군’
숨겨진 학대 밝혀내려면 지역사회 나서야
남편과 둘째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이모(66)씨는 오랫동안 남편(73)에게 폭행을 당해왔다. 그러나 지적장애 1급인 딸은 아버지를 말릴 힘이 없었고, 이씨도 치매를 앓고 있어 남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인근 지역에서 실습 중이던 요양보호사 실습생이 이를 발견해 노인보호 전문기관에 신고했고, 이씨는 따로 살고 있는 첫째 딸 집으로 거처를 옮겨 가까스로 남편의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12년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4개 노인보호 전문기관을 통해 접수된 신고 건수는 9340건으로서 전년에 비해 8.6% 증가했다. 가해자 대부분은 이씨의 경우처럼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인 경우가 86.9%에 달했다. 가해자 중 ‘아들’이 41%로 가장 많았다. 특히 학대를 받은 노인은 여성(69.1%)이 남성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피해자들은 배우자가 없고(62.7%), 학력이 높고,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학대 받을 위험이 더 컸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 두드러진 다른 특징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60세 이상 노인인 일명 노노(老老) 학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944명이던 60세 이상 가해자는 지난해 1314명으로 39.2% 늘었다. 노인 스스로 식사도 거르고 의료 처치도 받지 않는 ‘자기방임’ 학대도 2010년에 비해 101%나 급증했다.
노인 학대 문제는 곪아터져야 밖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해자가 가족이다 보니 신고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노인들이 많다. 정부도 신고율을 높이기 위해 노인학대 예방교육을 의무화하고, 사회복지사 등 신고 의무자의 직무 불이행에 대한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시·도별로 2개씩 노인보호 전문기관을 확충하고, 상담인력을 충원해 피해 노인을 가해자로부터 일시 격리하는 전용 쉼터 운영을 내실화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숨겨진 학대 피해 사실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학대 피해를 줄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올해 초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여성 노인의 안전 실태 조사’에서 “여성 노인의 학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조기 발견과 사후관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독거노인, 치매노인, 와상노인 등이 학대 위험군과 치매, 알코올중독, 정신장애를 지닌 잠재적 위험군 그리고 현재 학대 행위를 하는 집단을 지역 내 정신보건센터와 연계해 모니터링해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이장·통장, 부녀회 등 지역사회 단체들이 주변의 노인들이 학대를 받고 있는지 지속적인 관찰을 하고 신고할 수 있도록 ‘노인지킴이단’으로 활동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2006년부터 ‘고령자학대방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법은 학대를 발견한 사람에게 신고를 의무화하고 보호자 부양 경감대책도 명시했다. 특히 시·군·면에 해당하는 시정촌과 지역센터가 연계해 노인학대 예방을 위한 협력 시스템을 갖췄다.